네가 있어 난 참 좋다.

『아빠, 나한테 물어봐』

아빠 나한테 물어봐.jpg 『아빠, 나한테 물어봐』 글 버나드 와버, 그림 이수지| 비룡소| 2015


아이는 계속 조잘댑니다.

“아빠, 나한테 물어봐”


책을 읽어주면 어른들의 반응은 한결같습니다. “아유, 저걸 그냥!” “뭘 이렇게 많이 물어봐”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의 끊임없는 질문에 지친 엄마들의 반응이지요. 어른들은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끊임없이 따라 다니며 계속 조잘조잘 이야기를 합니다. 견디다 못해 ‘좀 조용히 할래?’라고 말을 내뱉거나 무시할 때가 많지요. 그런데 돌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즐거웠던 일, 속상했던 일 조잘대며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물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실제 맞닥뜨리면 또 달라지지요. 뭐 이런 일이 어찌 이것뿐이겠나요.


어쨌든 이 아빠, 굉장히 존경스럽습니다. 인내심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아이와 산책하는 시간에 아이에게 집중하는 것 말고 다른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싶기는 합니다. 아이의 발걸음을 뒤따라가고, 아이의 말에 반응하고, 아이를 기다려 주는 것. 그것 말고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을까 말입니다. 요새로 치면 스마트폰만 켜지 않아도 다행인걸까요? 사실 시간이 넉넉하고 여유 있게 보장되어 있다면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어른들은 참 많이 바쁘네요. 이 시간이 소중한 시간이라는 건, 아이들이 다 크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아이와 아빠는 집에서 출발해 놀이터, 호수, 꽃길, 공원, 회전목마, 아이스크림 가게, 분수, 숲 속을 걸어갑니다. 걸어가며 아이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지요. 아이의 이야기에 나오는 것들은 조그맣고 앙증맞게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낙엽 긁어모아 하늘로 뿌리기, 푹신한 낙엽에 두 팔 벌리고 눕기,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맞으며 앉아 있기, 비오는 소리를 핑피링, 퐁포롱, 팡파랑 표현해보기, 아이는 가을 풍경을 마음껏 즐기고 집에 와 거울을 보며 아빠와 양치질을 합니다. 그리고 잘 자라고 뽀뽀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지요. 아이와 아빠가 보내는 한나절입니다.


KakaoTalk_20200521_135332260.jpg 위의 책 한 페이지, 이수지 그림


버나드 와버의 글에 감명 받아 이수지 작가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면 그림이 단순히 글에 딸린 삽화에 멈추지 않고 글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드로잉 선입니다. 몇 개의 선으로도 흩날리는 머리칼이 완성되고 얼굴에 감정이 드러납니다. 아이와 아빠는 콧구멍과 눈이 닮았습니다. 두 개의 점으로만 표현되었을 뿐인데 신기하게 그게 아빠와 아이가 닮았다고 느끼게 합니다.


깊은 가을, 호수가 있는 공원 풍경도 아름답습니다. 색연필로 뭉개 표현한 단풍잎도, 한 잎 한 잎 섬세한 선으로 묘사한 나뭇잎도 깊은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끼게 합니다. 가을을 대표하는 색인 빨강색이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아이는 빨강색을 좋아하는데 풍선도 빨강, 장화도 빨강, 외투도 빨강입니다. 아이와 아빠는 알록달록 물든 늦가을을 마음껏 즐기고 있습니다.


KakaoTalk_20200521_135332260_01.jpg 위의 책 한 페이지, 이수지 그림


둘의 관계와 애정이 글과 그림으로 느껴진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이 책에는 ‘나는 아빠를 믿어’ ‘아빠는 네가 자랑스러워’ ‘사랑해’ 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둘이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는지, 얼마나 든든해하는지 표정과 대사를 통해, 반나절의 일과 안에 차곡차곡 드러납니다.


진부한 표현을 빌자면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고 합니다. 매번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 든든한 마음의 빽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귀신같이 알아차린다고 하지요. 그건 말이나 물건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아니라 그저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니까요. 이 책의 아이가 얼마나 뿌듯해하는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사랑받고 있는 아이라는 느낌이 여기저기 묻어납니다. 자신만만하고, 발랄합니다. 좋아하는 것도 많고, 생일 날 자신이 받고 싶은 선물도 정확히 이야기할 줄 알지요. 엄마는 없는지, 잠시 외유중인지 모르겠지만, 아빠가 정말 아이를 많이 사랑하는 구나. 그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도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래서 한껏 마음이 풍요롭고 행복하구나. 느껴집니다.


이렇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이, 그런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소중히 여겨 주십시오. 그리고 누군가에게 당신도 분명 그런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십시오. 그것이 얼마나 서로를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는지 알게 해 주는 이 책이 저는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읽고 나면 가슴이 뭉클하고 뿌듯해집니다.




이 하나의 그림


사각사각 서걱서걱

슥슥 삭삭

연필이 종이를 가르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점 두 개

세로로 긴 선 하나

그리고 다시 점 두 개

아이와 아빠는 참으로 닮았다.


몇 개의 선으로 표현한 머리카락

아빠는 색이 조금 연하고 숱이 없고

아이는 좀 더 검고 숱이 많다.

귀 뒤로 야무지게 넘겨진 한 쪽 머리 표현이 좋다.


빨강을 좋아하는 아이답게

양치컵도, 내복도, 칫솔도, 거울 속에 비치는 샤워부스의 풍선 무늬도

모두 빨강이다.


든든한 아빠가 항상 등 뒤에 있음을 아는 행복한 아이의 표정이 읽힌다.


아이와 아빠.jpg 위의 책 한 페이지, 이수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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