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 심기-유정성의 문법
* 일상 너머 책읽기 책 동무들과 5주 동안 <향모를 땋으며>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2019) 매일 한 챕터씩 읽어 가기로 했다. 시나브로 사라지는 글귀와 생각을 잡으려 한다. 소소하고 느리지만 꾸준한 기록. 기록은 힘이 있다. 일상은 반짝인다.
만물이 살아 있는 세상에서는 전부 용언이 될 수 있다. '언덕이다' '모래사장이다' '토요일이다' p.90
걸음마를 하는 아이는 동식물을 마치 사람인 것처럼 지칭하며 자아와 의도와 공감을 확장한다. 그러지 말라고 가르칠 때까지는. 우리는 재빨리 아이들을 재교육하고 잊어버리게 한다. 나무가 '사람'이 아니라 '그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풍나무를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 사이에 벽을 세우고는 도덕적 책임을 방기하고 착취의 문을 연다. 살아 있는 땅을 '그것'이라고 말하면 땅은 '천연자원'이 된다. 단풍나무가 '그것'이면 우리는 사슬톱을 들이댈 수 있다. 하지만 단풍나무가 '그녀'라면 한 번 더 생각할 것이다. p.93
언어에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 그래서 세심하고 정갈하게 언어를 쓰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사람들은 그런 것에 별로 많이 신경쓰지 않는다고. 그냥 관습적으로 쓰이는 것도 많다고. 거기에 특별한 의미는 없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거기가 시작이다.
장애통합교육이든 장애비장애통합교육이든 뭐 어떠냐고, 어쨌든 같이 하는 통합교육을 이야기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장애통합교육은 장애인만이 원래 있는 사회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은연중에 내포한다. 아니다. 비장애인도 장애인의 사회에 통합되어야 한다. 한 쪽만 일방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둘 다 같이 평등한 위치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 언어는 이러한 마음을 비춰 보이는 거울이다.
<향모를 땋으며>에서 말하는 유정성의 언어는 생명의 언어, 살아 숨쉬는 언어,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언어이다.
향모를 땋으며
향모 심기
유정성의 문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