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와 푹신이』하야시 아키코 글그림, 한림출판사
어느덧 『은지와 푹신이』는 나의 고전, 최애 책 중 하나가 되었다. 어느 시절에 읽느냐에 따라 맘에 오는 부분이 달라지는데 이번에는 ‘첫’에 유난히 꽂힌다. 그런데 어쩌면 처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은지와 푹신이』를 처음 만났을 때 은지와 푹신이가 처음으로 모래 언덕을 만나는 장면에서 ‘아, 그림책에 이런 풍경이 나올 수 있구나!’ 가장 놀라웠으니까. 다시 보고 또 보니 『은지와 푹신이』에는 꽤 많은 ‘첫’이 나온다.
푹신이는 아기를 돌보아달라는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은지네 집에 왔지만 아직 아기는 없다. 기다림이 지루해 꾸벅꾸벅 졸다 눈을 떠 보니 드디어 아기가 있다. 은지와 푹신이가 처음 만나는 순간이다.
“아, 아기다! 아기가 이렇게 작고 귀여운지 정말 몰랐어.”
푹신이는 기뻐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어요.
아기가 세상에 나왔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세상과 연결되어 있지만 탄생과 함께 탯줄을 끊고 비로소 홀로 세상과 마주한다. 푹신이가 처음으로 만난 아기는 작고 귀엽다. 푹신이는 기뻐서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아, 내 아이들을 처음 만난 날 나는 기분이 어땠지? 푹신이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던가? 너무 기뻐 눈물이 났나? 이상하게 첫 순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두 아이 모두 제왕절개로 세상에 나왔다. 첫 아이 때는 반신마취를 하고 있었다. 아이가 꺼내지고 건강한 걸 확인한 후 나는 바로 잠이 들었다. 둘째 때는 마취가 풀리며 뼈 속까지 스며드는 추위에 덜덜 떨었던 기억만 있다. 아이와 내가 함께 사투를 벌여 힘겹지만 감격스럽게 아이가 드디어 세상에 홀로 섰다는 느낌보다 정말 그냥 꺼내진 기억, 초보 엄마가 푸석하고 부은 몸으로 젖을 물리느라 애썼던 기억, 내 몸의 기억만이 남아 있다. 경사스럽고 신비하고 다시는 못 올 경이로운 첫 만남의 순간을 나는 그냥 그렇게 지나쳤구나. 은지를 처음 만난 푹신이의 꼬리가 바짝 들린 자세와 얼굴 표정을 보며 이제야 아쉬운 마음으로 그 시간을 더듬어 본다.
은지와 푹신이는 처음으로 기차 여행도 한다. 둘 만의 특별한 여행, 기차 안에서 도시락도 처음으로 먹었을 테다. 여행 후 푹신이는 처음으로 목욕도 한다. 모래언덕에도 처음으로 파묻혀 봤으니 목욕이 얼마나 따뜻하고 편안한지 비교 대상이 있어서 더 잘 알겠지. 이제 푹신이는 목욕을 싫어하지 않을까?
그리고 모래언덕과 바다!
은지가 모래 언덕을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생명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모래언덕, 이상하게 모래만 넓게 계속 펼쳐져 있는 곳. 넓다거나 크다는 표현에 다 담을 수 없는, 물이 가득 출렁이는 바다. 간접경험으로 상상도 해보기 전일 수 있는 아이가 처음으로 모래사막이나 바다를 마주하면 어떤 느낌일까? 은지가 서 있는 뒷모습을 보면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모습이 상상이 된다.
아이들이 태어나 세상 모든 만물과 만나는 순간은 모두 첫 만남이다. 줄지어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도, 길가 틈에 피어난 노란 생명도 얼마나 경이롭고 두렵고 이상할까. 그러니 길을 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자꾸 느려지는 것은 당연하다. 개미도 봐야 하고 큰 레미콘 바퀴도 관찰해야 한다. 세상에는 신기한 것 투성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시선의 높이도 경험의 깊이도 다르다는 것을. 그래서 되도록 한 곳에 머물며 보고 충분히 느낄 수 있게 시간을 넉넉히 두고 채비를 하고 길을 떠나면 좋겠다 싶은데, 이도 아이들이 큰 이제야 든 생각이다.
'첫'에 꽂힌 후 요 며칠 처음 만난 것들을 기록해 보기로 했다. 이 나이까지 살아 온 나에게도 의외로 '첫'이 많았다.『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에서 두더지 모울은 땅속에서 나와 강마을 래티네 집으로 가며 ‘처음’으로 ‘강’을 마주하는 장면은 묘사가 너무 아름다워 읽고 또 읽었다.
모울은 발 닿는 대로 어슬렁거리다가 강물이 불어난 강기슭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이제 행복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다. 모울은 태어나서 한 번도 강을 본 적이 없었다. 강은 매끄럽고, 구불구불하고, 통통한 동물 같았다. 이 동물은 꼴꼴거리며 무언가를 쫓아가서 콸콸거리면서 붙잡았다가 쏴쏴거리면서 놓아 주었다. 그리고 벗어나려고 버둥거리는 새 친구들의 뒤를 다시 덮쳤다. 강의 새 친구들은 붙잡혔다가 놓여나기를 되풀이했다. 이 동물은 반짝거리면서 번쩍거리면서 팟팟거리면서 찰찰대면서 윙윙대면서 졸졸거리면서 보글거리면서 몸서리를 쳐 댔다.
-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케니스 그레이엄 글, 어니스트 하워드 쉐퍼드 그림, 신수진 옮김, 시공주니어 p12~13
얼마 전 나의 ‘첫’은 엉뚱한 만남을 이끌기도 했다. 처음으로 모인 생태책모임 시간, ‘어떤 나무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그녀는 ‘은행나무요’ 라고 답했다. 많은 대답 중 그 대답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는데 그 뒤로 은행나무만 보면 그녀가 생각났다. 용문사에 아주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 후부터 한 번 꼭 만나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드디어 1100 여 살 된 은행나무를 만난 날! 그런데 처음 마주한 은행나무는 이런 저런 생각을 낳긴 했지만 신기하리만치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은행나무를 만나러 가는 길, 평생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느껴보지 못한 계곡 물 소리가 나에게 왔다.
처음 들었을 때 어디서 공사하는 소리인줄 알았다. 졸졸졸, 또랑또랑또랑 귀엽게 흐르는 물소리가 아니라 천둥 소리처럼 콸콸콸콸, 쏴쏴쏴쏴 박력 있게 몰아치는 소리. 소리에 기운을 부여할 수 있다면 그건 기백이 가득하고 뭐든 못 할게 없을 것처럼 용기 불끈 샘솟게 하는 진취적이고 힘찬 소리였다. 주변 모든 소음을 빨아들이는, 온통 그 소리에만 집중하게 하는! 나와 은행나무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비가 많이 온 다음날 우연찮게 만난 우렁찬 계곡물 소리로 나에겐 기억되겠구나 싶다.
많은 첫 만남을 모두 기억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 피곤해서 어찌 살겠는가. 모든 첫 만남이 아름답고 경이롭고 사랑스러운 것도 아니다. 첫 만남만이 의미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나는 은행나무와의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을 기다린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첫’을 가급적 피하고 익숙한 곳, 편한 사람을 더 많이 찾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예상할 수 없는 수많은 ‘첫’이 도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은행나무와 계곡물처럼 처음에서 오는 호기심, 설렘, 약간의 불편함은 또 다른 길로 나를 이끌지도 모르지 않은가! 처음이 없다면 익숙함과 편안함도 없으니 나에게 오는 ‘첫’을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경이로운 눈으로 마주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