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정답

by 김작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자주 하는 말과 듣는 말 중에 '기도밖에 답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1565427739079.jpg 출처 : 2019 sdy하계수련회 집회 중



놀랍게도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대부분 체념과 푸념식으로 말할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바라보지 못하고, 한계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러한 생각을 말하며 대화를 주고받은 어떤 신앙인은 "포기가 아니라 이제 내 손을 벗어난 신의 영역이기에 온전히 믿고 맡기는 기도"라고 말한다. 진심이라면 굉장한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굉장한 믿음이며, 굉장한 신뢰이다. 그런데 조금만 더 솔직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신께 맡긴다는 신뢰보다는 포기의 기도에 가깝게 들리기 때문이다.


정말 신실한 믿음으로 고백하는 말인가? 기도밖에 답이 없다는 말은 답을 얻겠다는 말과는 다른 의미인가? 체념과 푸념이 아닌, 정말로 답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는 것인가?


쏟아지는 질문들에서 믿음이라는 개념을 살짝 엿볼 수 있다.

기대감.

기도를 하고 답을 구하며 기대를 하는 것. 이것은 체념과는 확연히 다른 행동양식을 불러일으킨다. 기도를 한다는 것에서 신께 믿고 맡긴다는 의미는 같지만, 기대가 있다는 것에서 신이 이루어갈 답(정의)의 구현에 동참하려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어떤 게 답일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고백과 함께 동참의 방향성과 운동성을 갖추고 실천까지 나아가게 된다.


한 번 더 질문을 갖자면, 믿음을 가지고 답을 구하면 품었던 기대는 어떻게 충족되는 것일까?




종교에는 핵심 철학과 가르침이 담긴 경전이 있다. 보통 우리는 경전에서 답을 구하게 된다. 삶의 고민과 함께 적힌 책이기에 신비로운 책이라는 선입견을 차치하면 잘 읽힐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현재 갖는 고민들과도 소통할 수 있다. 이를테면, 먹고살기 힘들어서 어떻게 하면 될지 고민하며 답을 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겠다.(다만 앞서 말한 것처럼 기복이나, 스스로 정한 답을 말하는 것은 빼두기로 한다.) 기도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이미 고민을 직시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생각의 방향성을 가지고 경전을 보게 된다.


성경에서 제시한 먹고사는 고민들 중 두 가지 정도를 꼽아보자. 어떨 때는 하늘의 나는 새와 들에 피는 백합화를 비유로 들어 그들의 먹거리와 입을 거리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어떨 때는 십일조를 걷어 공무(신정국가에서의 공무는 예배의 집행이기도 했다.)를 집행하고, 나그네와 노약자, 과부 등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예산으로도 사용하며 정치 경제 분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개인과 공동체의 관점으로 정리가 가능하다. 개인적으론 절대자의 신뢰성을 강조하며 걱정에 대한 위로를 제공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는, 공동체적인 관점으로 경제체제를 적용하는 정치로써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개인적인 고민에서 시작된 '답을 구하는 기도'가 결국 하나님의 통치대로 해결될 것을 성경을 통해 알게 되면서, 하나님의 통치대로 이루어지길 소망하는 '답을 말하는 기도'로 변하게 된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기도인 것이다.




기도밖에 답이 없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왜냐하면 기도는 답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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