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인들이 갖는 고민 중에 한 가지가 '정죄'이다. 쉽게는, '남을 미워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는 이들이 많다.
- 기독교 내에서 더 극심하게 왈가왈부하는 죄들에 대하여 세계는 다르게 반응한다. 동성애, 낙태 등의 예를 들어도 나라든, 교단이든 모두 다르게 받아들인다. 지극히 당연하고 보편적으로 적용될 것 같은 살인마저도 전쟁에서 총을 쏘는 군인들에게는 죄로 규정되지 않는다.
Q. 인간은 죄에 대하여 심판자로 설 수 있는가?
- 국가에서는 법이 있고, 더 작은 단위의 집단에서도 법들이 존재하여 판단의 근거가 된다. 그런데 난민을 대입하면 달라진다. 그들에게 행한 범죄는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지만 틀을 벗어난 사람들에 대하여는 죄가 적용되지 않으며, 심판할 수 있는 근거 역시 제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심판자로 설 수 있는 사람이 없게 된다.
그렇다면 정말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일들에 대하여는 침묵해야 하는 것인가? 정의는 어떻게 세울 수 있는 것인가? 필연적인 고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의 폭력성을 알면서도 최소한의 사회적 정의를 위하여 우리는 법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합의한 범죄를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
그런데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면서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거나 심지어는 법의 잣대를 움직이게 만드는 사회적 강자들이 있다. 법의 힘을 웃도는 불의한 권력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들에 대하여는 정의 실현이 가능한 것일까? 그들로 인하여 피해를 입거나 피해에 노출된 사람들 즉, 사회적 약자들은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약자가 강자에 귀속되는 것이 당연하며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시대와 사회도 있지만, 신앙을 기초로 성경을 근거하여 정의로운 사회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하나님은 대체 정의를 어떻게 이루시겠다고 하시는 것인가? 성경을 자세히는 모르고 신앙이 없는 사람들조차 세계 4대 성인으로 존경하는 예수의 삶을 통해 성경을 요약해보자. 약자를 보호하고 위로하며, 강자들로 하여금 지극히 작은 자에게 사랑을 베풀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피해자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위해 탄원하시는 예수의 가르침과 삶을 통해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강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 주변을 돌보지 않는 각자도생의 논리는 성경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항은 정의를 이루기 위한 최소한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