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라면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지며 그와 영적으로 교제하게 된다. 그런데 정말 모든 신앙인들이 영적 교류를 체험하는 것일까? 예배는 모든 상황에서 가능한 것일까?
SDY 93기 청년 모임에 함께 한 날. 한강.
예배라는 것을 표현한다고 하면 신성한 것, 거룩한 것, 영적인 것 등 굉장히 추상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기쁨과 감사라는 보다 더 명확한 감정으로 표현하는 이도 있지만, 기쁨과 감사가 예배와 동일할 수는 없다.
추상적인 예배에는 갖가지 절차가 덧붙여져서 시각화된다. 그럼에도 이 절차가 꼭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따를 뿐이다. 흔히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주를 이룬다.
예배의 방법에 대하여서도 많은 말들을 나눈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도 그중 하나인데, 위에서 언급한 예배(찬양, 기도, 말씀 묵상)를 삶의 매 순간 하면 삶으로 드리는 예배인 것일까? 더 나아가 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고도 말한다. 잘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이다. 무엇이 잘 드리는 예배인지 물으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고 답한다.
추상적인 예배의 표현과 그래서 생기는 추상적인 열심들이 과연 얼마나 와 닿게 될까?
'잘 드리는 예배'라는 것을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 건, 결국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어떤지 우리로선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혹시 하나님이 받지 않는 예배가 있을까? 최소한의 바운더리를 만들기 위해 바닥의 경계면이라도 조금 알아보면 좋지 않을까?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어디서 나오는지 성경을 조금 찾아보려고 한다.
일단 창세기의 가인과 아벨은 워낙 유명한 일화이다. 아담의 아들들인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하나님은 아벨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지만,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 결국 가인은 시기로 인하여 형제인 아벨을 죽이고 최초의 살인자로 등극하고 만다.
그리고 두 번째 찾은 것은 구약성경의 아모스서이다.
"나는 너희의 각종 절기 행사들을 미워하고 싫어한다. 나는 또 너희의 집회들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는다. 너희가 번제물과 곡식 제물을 가져와 내게 바칠지라도, 내가 그것들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살진 짐승을 잡아 화목 제물로 내게 가져오더라도, 나는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내 앞에서 부르는 찬양의 노랫소리도 집어치워라. 또 너희가 내 앞에서 하프를 연주한다고 해도, 나는 그 소리를 듣지 않겠다."
(쉬운 성경 아모스 5장 21절 - 23절) 여기에서 '나'는 하나님이다.
번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제사이다. 희생된 짐승의 가죽을 제외한 모든 것을 태우는 제사로 열심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화목제는 또 어떠한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분쟁을 종식하고 화목이 이루어짐을 감사하여 드리는 제사이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창조되었다고도 말한다. 그 역할을 다하여 찬양한다고 해도 아모스에서 하나님은 집어치우라고 말씀하신다. 이 모든 것들을 좋아하시긴커녕 받지도, 듣지도 않으신다.
왜일까?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배우며 체험하게 되는데 어째서 이렇듯 강경하게 우리를 거부하시는 것일까? 해답을 조금 얻고자 아모스서를 조금 더 봐보기로 하자.
"너희 무리들은 성문 광장에서 올바른 말로 너희 죄를 꾸짖는 자를 미워하고, 사실 그대로 정직하게 말하는 자를 싫어한다. 너희 관리들은 또 가난한 자를 짓밟고, 그들에게 부당한 세금을 매겨 그들의 곡물을 탈취하기에 급급하였다.
-생략-
참으로 너희의 죄악이 얼마나 많은지, 또 너희의 허물이 얼마나 큰지, 내가 낱낱이 알고 있다. 너희는 의로운 자를 학대하였고, 뇌물을 받고 성문 광장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억울한 판결을 내렸다."
(쉬운 성경 아모스 5장 10절 - 12절)
이스라엘 사람들의 행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열심을 다하여 제사를 드렸다. 죄를 밥먹듯이 지으면서도 제사를 통해 형식적으로 죄를 뉘우쳤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제사는 어느덧 악한 행위 즉, 죄를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과연 우리는 약자를 짓밟고서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땀 흘려 애쓰는 것을 신령과 진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수는 우리를 향해 외식하는 것을 지적한다. 외식이란 종교적 가식과 위선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는 특히 구제, 기도, 금식, 판단, 부모 공경, 율법 준수 등에 대한 표리부동을 지적하였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갖는 윤리적인 문제는 행위만이 아닌, 품는 마음의 중심까지도 살펴야 하기에 범위가 넓다. 물론 우리는 속으로 악한 생각을 하고 겉으로만 선하더라도 다행일 정도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외식은 마음과 다른 선한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외식은 나의 선한 행위를 만천하에 드러내어 스스로 영광을 받고, 그에 따르지 못하는 자들을 배척하는 행위인 것이다. 성경은 그것을 불의라고까지 표현한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영적 교류를 체험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지만, 내 모습이 아모스에서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다면 기쁘시게는커녕 예배가 불가능해진다. 예배와 외식은 이렇듯 경계면에서 맞닿아 있다.
오직 너희는 공의를 물처럼 흘러넘치게 하고, 정의를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항상 흐르게 하라. (쉬운 성경 아모스 5장 24절)
예배의 주체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다. 따라서 정의를 내게 두는 것은 외식이며 예배가 불가능해진다.
우리는 분명 정의를 세우고자 불의를 따져 물어야겠지만, 언제나 불의를 배척함으로써 자신을 정의의 입장에 세우려는 태도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불의한 것들을 지적하는 것은 나를 정의로운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그것이 외식이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