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kim_smalll
아무리 외면해도 계속 따라오는 고통은
아무리 직면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고통을 붙잡고 기어오르다 가도
곧잘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반복되는 매달리기가
결국 인생이었다
어깨가 아프고 팔꿈치가 아리다.
클라이밍을 하면서 안 입어도 될 상처를 입는다.
예전에 익스트림 스포츠에 대한 질문으로
한국인과 외국인의 답을 비교한 예시를 봤다.
서핑을 하다가 상어가 나타나 당신의 손을 물어 절단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고 한다면,
당신은 회복하고 나서 서핑하러 또 갈 것인가?
외국인은 그래도 '간다'라고 대답하지만,
한국인은 바다 근처도 다신 '안 간다'라고 답한다는 것이다.
국적 비교는 차치하고, 사람 대 사람으로 나눠 보자면
익스트림 스포츠의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과,
자신에겐 위험이 닥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대답이 갈린다.
물론 옳고 그른 문제는 아니다.
감수하지 않고도 막상 겪으면서 즐기고 있으니까
상처와 피로의 누적에도 계속 클라이밍을 하듯이.
아무리 위험을 감수해도 고통의 크기는 모르니까
극심한 고통에서 비롯된 트라우마가 남듯이.
충분히 사랑했고 상처도 행복하게 감수했었지만
이젠 몸이 경직되어 쉬이 움직이지 못하듯이.
옳고 그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