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도피처는 글이었다.

글 김작은, 사진 @am_i_being

by 김작은
결국 도피처는 글이 되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이별 직후 나는 두 가지 질문을 되뇌었다.

어떻게 이러지?라는 현실도피성 질문과

이제 나는 뭐하지?라는 현실적인 질문이었다.

첫 번째 질문은 뭐 그렇다 치고 두 번째 질문에서는 답을 찾아야 했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책을 정말 안 읽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인문학이나 신앙서적, 흥미로운 자기 계발 정도의 책만 몇 권 읽었을 뿐이다. 군대에서도 책을 읽기로 다짐했던 적이 있다. 억지로나마 공지영 씨의 소설이나 파울로 코엘료 같은 이름 있는 작가의 책을 찾아 읽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 당시엔 어려워서 때려치웠다. 병장 때는 매일 불침번 근무를 집어넣어 성경을 읽기도 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억지스러운 동기부여에 목표는 없었고, 때문에 쭈욱 이어가질 못했다. 게다가 소설은 뭔가 사는 데에 도움이 되질 않는 것 같았다. 그런 나였기에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문학이 나와서는 안될 것 같아 보인다.


문학이라.

윤동주의 시는 그 시절을 생각하여 억지로 감정이입을 해야 했었고, 사랑과 이별 노래들은 애절한 보이스로 떨림 있게 부르면 되는 기교였고, 소설은 그저 작가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장황한 글에 불과했다.

이별은 왜 나에게 문학의 깊이를 알게 해 주었는지 모르겠다. 문학은 신기했다.

윤동주의 시는 개인적으로 다가왔다. 시대를 떠나서 윤동주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기교를 뺀 담담한 노래들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감정이 전달되었다. 소설은 여전히 작가의 위대함을 느끼게 하지만 더 이상 장황한 글이 아니라, 찰나에 지나가버릴 수 있는 감정의 표현들을 낚아채 글 속에 녹여 순간순간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게 했다.


사실 글을 읽기보다는 글이 쓰고 싶어 졌다. 그녀는 나의 삶이었고, 의미였고, 정체성이었고, 미래였기에 이별 후에는 나의 그런 진지한 사랑이 허무하게 사라지고 그동안의 삶 역시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는 안된다고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나의 정체성에 인생무상이 기본 탑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칫, 언제든 다시 무의미함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거다.


무얼 해야 할까.

바로 그때, 밥벌이를 떠나 글이 쓰고 싶어 졌다. 사랑과 이별, 나의 삶에 대해 회고하여 연결고리들을 이어서 문학으로 풀어내고 싶어 졌다. '글'이 내가 겪은 것들을 원동력으로 삼아 해낼 수 있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겪은 것들을 죽이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욕심 없는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가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살 그런 꿈을 꾸진 않을 것이다. 내가 그랬다. 허황된 꿈을 꾸지 않았으니까. 아마 누군가는 나의 책 쓰기 목표를 보고 비웃을 수도 있겠다. 진심으로 응원할 수도, 영혼 없는 응원을 보낼지도, 아무런 관심이 없을지도, 기대할 수도, 두고 볼 수도 있겠다. 주변에서 뭐라 하건 나에겐 타당했다.


첫째로 삶에 의미를 찾았고,

둘째로 알고 보니 나에겐 시간이 많았다.

셋째로 글로써 밥벌이를 할 생각은 없었다.






책 읽는 습관이 없던 나는 '일주일에 한 권'이라는 목표로 2년간 100권 읽기와 이렇게 글을 끄적이다가 브런치 작가를 해보자는 구체적인 목표도 생겼다. 현재, 목표를 세우고 3년이 흘러서야 113권을 읽었고, 브런치 작가는 한 번 떨어진 뒤, 재도전으로 달성하게 되었다. 이제 군대에서 다짐했던 것과는 다르게 책을 읽을 동기보다는, 삶을 사는 동기로써 글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별은 여전히, 사랑 다음으로 찾아와 나를 태우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