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그리고 영웅

글 김작은, 사진 @am_i_being

by 김작은
어렸을 때 물건을 훔쳐봤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나도 그랬었다는 반응을 한다. 의외였다. 나만의 은밀하고 두려운 비밀인 줄 알았는데.





4학년 - 도둑질의 시작

동네의 골목 어귀에는 구멍가게가 군데군데 있었다. 작디작은 가게들 중엔 심지어 3평 남짓한 크기도 있었는데, 그 안에 겨우 설치된 가판대와 진열장에 작은 물건이 수두룩했다. 알사탕, 5cm 크기의 장난감, 불량식품 같은 것들에서 일반 과자, 음료 등도 있었다.

골목길 언덕을 오르기 직전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100원짜리 알사탕을 집어 들고는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5분이나 서성이다가 살게 없다는 듯한 어색한 연기를 하며 나왔지만, 나의 양심에 가게만 한 구멍이 뚫리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알사탕을 꺼내어 손에 꼭 쥐었다. 어떤 다짐을 하고는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 그 알사탕을 고르는 척, 제자리에 놓았다. 그리고 신문을 읽던 할아버지를 슬쩍 보았는데 눈이 마주쳤다.


"...... 잘했다."

"......"


나는 얼굴을 들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도망쳤고, 다시는 그 구멍가게에 갈 수 없었다. 그래도 구멍가게는 군데군데 있었다.


5학년 - 영웅의 시작

동네에는 큰 마트들이 생겨나다가 급기야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때는 사춘기의 시작이었던 5학년, 소풍을 앞둔 날이었다. 함께 다니던 친구들과 간식을 사러 대형마트에 갔다. 어째서 쇼핑하러 마트엘 왔는데 하나같이 돈이 없는가. 그리고 상황은 뻔한 결말로 치닫게 된다.

A : "우리, 훔치자!"

B : "뭘 훔쳐?"

A : "초코바 같은 거는 주머니에 들어가잖아."

C : "오......!"

B, C : "그래 그래."


친구들은 어색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재빠르게 주머니에 초콜릿이나 작은 과자를 하나씩 넣었다. 나의 솜씨는, 으뜸이었다. 재능이 있었다. 주변을 보고 주머니에 넣는 것은 하수였다. 나의 점퍼의 소매는 통이 제법 컸고 초코바를 고르는 척하다가 손가락과 손목 스냅으로 아무도 모르게 소매에 넣었다. 주변을 살피는 동작도 없는 말끔한 일처리.


C : "이제 가자."

A : "야, 얘 아직 안 한 거 같은데? 넌 안 훔쳐?"

B : "조용하고 일단 나가."


내가 B 였다.

나의 실력은 바로 옆에 있는 친구들조차 보지 못한 전광석화의 빠르기였던 것이다. 친구들의 감탄은 나를 도둑에서 영웅으로 탈 바꾸기에 충분했고, 구멍가게처럼 주인아저씨와 마주칠 일이 없어서 양심도 무사했다. 그렇게 3차례나 '핫브레이크'를 훔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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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 모든 시작의 종료

약 2,000명의 학생이 있는 초등학교에서 가장 높은 학년이었고, 덕분에 가장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던 시절이다. 못된 짓은 용기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 하면 할수록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번엔 6명이 길을 걷다가 골목 어귀에 있는 작은 슈퍼를 지날 때였다. 슈퍼의 정문 옆으로 작은 문이 있었고, 그곳은 음료 같은 것을 보관하는 창고 같았다. 1.5L 음료 6개가 묶여있는 1세트가 창고 앞의 길까지 나뒹굴고 있었다. 물건을 넣다가 따로 빠진 것이겠지? 우리 중에 누구도 저 음료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자랑거리가 필요했기에 나는 당당하게 들어 올렸다. 친구들의 눈에 깃든 동경을 느끼며 걷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했다. 덕분에 지나가던 아저씨가 붙잡을 때 바퀴벌레처럼 달아나는 친구들처럼 뛰지 못하고 나만 잡혔다.


주인아저씨는 모두를 소년원에 보내겠다고 빨리 다른 애들 부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의리가 있지. 친구들을 팔 수는 없지. 근데 부르려 해도 어떻게 부를 수가 있단 말인가. 요즘처럼 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곧이어 엄마가 불려 왔고 사정없이 비셨다. 아저씨는 몹시 흥분하면서도 할 일이 있기에 잠시 나가야 했고 주인아주머니가 대신 우리를 지켰다. 아주머니는 이런 일을 너무 많이 겪어서 아저씨가 더 흥분하는 거라며, 진심으로 반성하는 엄마와 나의 모습에 선처해주셨다. 우리는 거듭 사죄와 감사 인사를 드리고 아저씨가 돌아올까 봐 도망치듯 서둘러 빠져나왔다.


집에 가는 길은 천년만년이었다. 잡히는 와중에도 음료가 터질까 봐 걱정했던 것처럼 나는 마음이 약하고 겁이 많은 꼬맹이었을 뿐이었다. 속을 썩이지 않던 나였기에 어떻게 혼날지 전혀 감도 안 오는 두려운 상태였다.





엄마 : "어떻게 애들은 아무도 없냐."

나 : "그러게...... 다 집에 갔나 보다."

엄마 : "그래도 애들 이름 말하지 않은 건 잘했어."

나 : "말해도 몰랐겠지?"

엄마 : "뭐 그건 그렇네. 호호. 엄마가 너만 할 때도 물건 훔친 적 있다?"

나 : "정말?"

엄마 : "그러엄. 딱 두 번! 그러고는 살 떨려서 못하겠더라. 그중 하나는 친구네 집에서...... 작은 뭔가였어. 오래돼서 기억도 안 나네."

나 : "...... 미안해, 엄마."

엄마 : "괜찮아. 엄마야 빌 수 있지만 느그 아빠 오면 이렇게 사과할 것도 욱해서 오히려 싸운다. 그러니까 비밀이야. 그리고 이제 너도 안 훔칠 거잖아."


엄마는 왼손으로 나의 오른손을 꼭 쥐고 걸었다. 나는 그 손을 더욱 꽉 붙잡았다.


"안 훔쳐. 다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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