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글을 매우 느리게 읽는 편이다.
누구나 그렇듯, 평범의 기준을 '나'로 상정한다. 글을 읽을 때도 [평범한 속도 = 내가 읽는 속도]인 줄 알았다. 그러나 글을 읽는 사람들은 보통 한 단어, 혹은 두세 단어, 혹은 한 문장씩 눈으로 입력하며 읽는다고 한다. 속독을 하는 이들은 두세 줄, 혹은 한 문단을 한 번에 읽고, 심지어는 한 페이지씩 사진 찍듯 읽는 이들이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2. 느리게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
처음엔 나의 부족한 독서량 때문인 줄 알았다가 읽은 책이 백 권을 넘어가도 나아지지 않자, 습관을 이유 삼게 되었다. 음독의 습관.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글을 읽을 때도 '속으로 말하기'가 되어버렸다. 단어를 이미지로 빠르게 입력하기보다는 한 음절 한 음절을 돌다리 건너듯 모두 짚어보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느린가 하면 시험 문제를 읽다 보면 항상, 거의 모든 과목에서 시간이 부족해 못 풀었을 정도로 느렸다.
3. 느리기 때문에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도 느린 속도가 동일하게 적용된다. 전체적인 이미지를 한 번에 입력하지 못하고 천천히 뜯어보게 된다. 관람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작품이 온전히 남지 않고, 감상의 파편만 남는다.
많은 것들을 봐야 했고, 많은 것들을 알아야만 했다. 어째서 이런 당위가 생겼는지는 나 자신도 알지 못했다. 아마도 평가라는 잣대를 들이밀게 된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느린 관찰보다는 빠른 스캔으로 많은 것들을 알아야-이렇게 알게 되는 것들은 머릿속에 저장되는 시간이 훨씬 짧았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시간은 매우 한정적이었고, 나는 느렸기 때문에 '대충 빠르게'가 다음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런 흐름에 '아마도'라는 수식을 붙인 이유는 내가 자각해서 생긴 습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덕분에 어떤 일을 하건 빠릿빠릿했고, 일이 생기면 얼른 해치워버려서 나는 내가 빠른 사람인 줄 알았다. 빠르게 경험하고, 빠르게 이해하고, 빠르게 실천하는 사람. 그래서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실망하고, 빠르게 회의감에 사로잡힌 사람. 이로 인해 모든 것에 의미가 없다고 여겨 꿈을 버린 사람. 비약적인 설명 같으나 빠르게 앞에 대충이라는 수식을 붙인다면 얼추 설명이 가능해진다.
하여간 트위드도 착샷 빼놓고 봐도 이제야 뭐가 이쁜지 알 거 같은 사람이라 저건 좀 어려움 아직 나에겐,...ㅋㅋㅋㅋㅋㅋㅋ
빠르게 익힌 대표적인 것이 악기 연주다. 매우 얕은 실력이기에 이제야 뒤늦은 후회를 해본다. 천천히 기본부터 익혀갈 걸.
4. 느리게 발견한 꿈이 있다.
대충 빠르게 먹어간 나이는 어느덧 서른을 훌쩍 넘겼다.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서른이 되어서야 이 생을 마치기 전에 한 번쯤 이뤄보고 싶은 꿈이 생긴 것이다. 그것은 작가였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이제야 읽게 되었고, 이제야 느린 속도를 자각하게 된 것이다. 현저히 부족한 독서량과, 음독의 습관과, 학창 시절의 부족한 공부 실력을 모두 탓해보았지만, 그것은 탓을 받을 일이 아니라 그저 '나'라는 사람이 느린 것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충 빠르게 했던 행위들로 가려져 있던 '나'의 발견이었다.
모든 것이 상실되어간다고 여겨지는 서른이었다. 사업의 실패와 취업의 난항, 6년 연애의 종식, 부모님과 함께 사는 월세 집에서의 내몰림 등. 이런 큰 사건들 외에도 마음이 공허해질 일들이 잔잔하게 일어나는 나날이었다. 빠르게 해결하려 해도 어색하기만 했다. 그렇게 해결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변에서는 그냥 힘들어해도 된다고 말했다. 잠시 쉬어가라는 말들도 함께. 그럼 정말 멈춰보자는 식으로 2년 가까이 취업도 안(못)하고 덕분에 소비도 거의 안(못)했다.
그렇게 멈춰서 인생을 돌아보니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데 무얼 위해 그렇게 빠르게 달렸는지 의아했다. 그냥 이렇게 살아온 것이 인생이려나? 무언가를 이룰 의욕도 없다면, 대체 아등바등 살아갈 이유가 있는 걸까? 천천히 생각해보니 많은 것들이 차근차근 눈과 머리에 들어오면서 나는 원래 느린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이라는 미술품을 보듯, 한 조각 한 조각을 천천히 들여다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젠 나답게 천천히 살아가도 되지 않을까?
글로 쓰고 보니 몇 줄 안에 들어오지만, 생각보다 어렵사리 발견한 나의 나다운 모습이었다. 그런 만큼 무언가 풀어내고 싶었다. 느리게 살아도 된다는 당위성을 내포한 '인생'을 글로 풀어내고 싶어 졌고, 그것이 꿈이 되었다.
빨리빨리의 습관은 쉬는 동안에도 다음 할 것들을 찾아 헤매게 만들었다. 위 사진들은 다음 일정을 고려하지 않고 쉬었던 나날이다.
5. 그리고 나답게 느린 걸음으로 꿈을 좇는다.
소년만화 '원피스'에서 주인공 루피는 해적왕이 되기 위한 꿈을 좇다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이룬, 어떤 '상태'에 도달하는 것만이 꿈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소년만화의 주인공이 꿈을 이룬 정지한 상태만을 말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이뤄가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어도 상관없다고 하는 말은 독자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그의 말처럼 도중에 죽는다 하더라도, 꿈은 종결되지 않을 것이며 그렇기에 만화의 모든 과정에서 사생결단의 일들을 벌이는 주인공의 모습은 과연 '루피다운' 모습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누가 언제 죽을진 아무도 모른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죽는다면, 사회에서는 '나'를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조급한 마음은 언제나 고개를 든다. 그러나 마음이 조급하다 한들 어쩌겠는가. 내가 느린 것을. 책에 대한 욕심 때문에 속독을 하고 싶지만 여전히 속독은 하지 못한다. 빠르게 소설들을 써 내려가고 싶지만 세상을 관찰하고 녹여내며 재창조하는 것은 여전히 느리기만 하다. 이런 나를 스스로 위로해본다. 어렵사리 발견한 느린 '나'는 언제든 느려도 된다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꿈을 향해 느리게 걸어가면서도, 느린 속도로 걷는 것 자체가 이미 꿈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한다. 느린 속도는 내가 가지고 있던 사회적 통념과 대척점에 서서 그 통념을 깨부순다. 꿈에 대한 성취와 성장으로 나누고, 도착 상태와 운동 상태로 나눈다. 나눠진 상태 중에 나다운 삶을 선택하여 통념이 정해준 길을 벗어난다. 이는 물에 잉크가 퍼지는 것과도 같다. 정해진 통념의 길 없이 계속 움직이면서 제멋대로 퍼져나가 나의 색을 입히는 것이다.
바로 주체적인 삶.
어쩌면 사회가 인정하는 것은 목표를 상정하여 그쪽 방향으로 나답게 움직이는 주체적인 삶, 그 자체이지 않을까. 오늘도 느릿느릿 나와 내 주위를 둘러보며 살아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