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 이야기로 목차를 정리하려고 보니까 1,000화도 가능할 듯...
'영웅은 없고 빌런만 있는 세계관'의 중소기업 이야기들을 풀어내려고 작심하니까 소재가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꾸준히 쓸 수 있을까 염려하던 게 무색하도록 지금도 계속해서 에피소드들이 생성되네요. 소소하게 지나는 일들까지 제가 기억할 수만 있다면 천일야화처럼 약 3년 동안은 매일 쓸 수 있을 거 같아요.
이 글을 쓰기 불과 한 시간 전에도 에피소드가 생성됐기에 펜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야기인즉슨 이사님이 코로나 확진에 걸리신 것 같다는 말들이 아리송하게 오갔던 것이죠. 명쾌하게 알려주지 않아서 다들 당황하고는 있지만 확신으로 기우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단 한 번의 휴가도 없이 칼같이 출근하시던 분이 오늘 안 나오셨다. 둘째, 근 일주일 동안 코로나 증상과 거의 흡사하게 고통을 겪으셨다.
이 정도라면 빌런 이야기가 아니겠죠? 코로나 증상을 겪으시는 동안 병원 검사도 받지 않고(자가 키트로만 검진하셨다는데...), 사무실 내에서 마스크도 안 쓰고, 기침을 하고, 정말 많이 돌아다니고는 명확한 말씀이 없으시니 빌런 이야기에 등극할 수 있는 것이겠죠! 신중한 부장님께서 이사님이 확진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 보니까 어딘가 정보통을 통해 귀띔받은 것 같습니다.
사실 대기업이든, 중견기업이든, 자영업이든, 아르바이트든, 무슨 일이든 간에 빌런은 존재합니다. 여기저기서 겪었던 일들을 정리해 보니까 빌런 짓이란, 자기 멋대로는 하고 싶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되더군요. 중소기업의 경영진 위치가 저 태도를 고수할 수 있는 위치이다 보니까 어떤 사람이 그 자리에 있어도 빌런 이야기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예외적 사례들도 간간이 풀도록 하겠습니다.
중소기업에서 겪은 '잡무'를 통해 글을 쓰는 만큼, 제 잡스러운 이력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현재 일하고 있는 곳 외에, 이 이력 안에서의 일들도 가끔 등장할 예정이랍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그 흔한 아르바이트 한 번 해본 적이 없습니다. 가정환경이 유복했던 건 아니고요, 생활지원금을 받을 정도였으니 오히려 가난하다면 가난한 가정이었죠. 그래서 아끼고 아끼다 보니 소비문화에 익숙지 않아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버는 것까지 흥미가 없어진 것 같아요.
갓 스무 살이 되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청소년 직업체험 프로그램에 신청하여 법원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아웃백 패밀리 레스토랑 서빙 알바, 카페, PC방, 편의점같이 흔하게 체험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간간이 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서비스 업계에서 일할 땐 직장 동료 빌런은 많이 못 봤어요. 하지만, 빌런 질량 보존의 법칙 때문일까요? 서비스를 받으러 수많은 빌런들이 찾아오더군요.
군대에 행정병으로 입대하면서 업무다운 업무를 해보았고, 전역 후에는 휴학을 이어가며 인터넷 떡 쇼핑몰에서 그야말로 온갖 잡무를 다 해보았습니다. 생산, 포장, 배달, 재고관리, 구매, 경리, 관공서 업무, 위생 검열, 인사관리, 면접 진행, 영업, 직판매, 전화상담 등...... 아마 이 경험 덕분에 지금까지의 모진 일들을 버틸 수 있던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으로 입사했던 회사에서는 저를 괴롭히던 대리님과 한바탕 싸우고 그만둔 경험도 있어요. 전무님께서 회사 상장을 앞두고 있다며 회계 자격증 취득까지 지원해주며 정규직 입사 제안을 하셨던 상황이었는데 말이죠. 어렸다는 핑계를 댈 수밖에 없는, 어리숙하고 미련한 객기를 부렸습니다.
인터넷 떡 쇼핑몰에서 했던 경력을 살려서 떡 유통 개인 사업도 해보았지만 첫 단추가 꼬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버티다가 결국 폐업하기도 했고, 본사에만 500명이 넘는 대기업에 총무 파견 계약직으로 들어갔다가 계약 만료 이후에는 4명이 일하는 소기업에도 들어갔었습니다. 대기업과 소기업의 문화를 바로 비교할 수 있었어 나름 유의미한 경험이었어요.
간략하게 소개한다는 게 자꾸 길어지니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다양한 경험이라고 자부할 생각은 없지만 이 경험을 통해 되도록이면 많은 분들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작은 바람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