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하신 어머니와 엄격하신 아버지 사이에서 2 남중 차남으로 태어나 화목한 가정에서...."
셀 수 없이 많이 썼었다.
'자기소개서'
대입 때도 몇 번 썼었지만,
그때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기보다 어른들이 시키는 공부만 하다가, 또 시키는 데로 대입 원서를 썼었다. 나는 '나'에 대해 아무런 고민 없이 빈칸만 채웠다. 자신을 뭐라 표현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취업 때는 달랐다. 기업 공채 시즌만 되면 이력서를 작성하다 말고 때아닌 자아 탐구가 시작된다. 첫 직장에 입사 이후 네 번의 이직이 더 있었다. 그 단계를 거칠 때마다 나는 나에 대해 무엇을 찾아냈는가.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기업 공채 시즌이 한차례 스쳐 지나가고 나면, 휴대폰 문자메시지함이나 받은 이메일함은 서류 전형 탈락을 알리는 메시지로 가득했다.
이렇게 생사라도 알려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심지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회사가 작아서 나를 모시지 못해 아쉽다며 불합격한 자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나를 거절해 버리는 겸손함까지 보여주었다. 어떻게 하면 그 기업들이 날 모셔가게 해서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을까.
어차피 이젠 출신 대학과 학점은 더 이상 바꿀 수도 없다. 인생도 지금까지 이미 살아왔는데 이력서에 한 줄 더 써넣기 위해 기업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더 화려하고, 더 있어 보이고, 더 극적인 삶으로 바꿔서 다시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대로 낙오자가 되는 것인가. 수없이 많은 고민과 좌절, 불안을 느끼며 살았던 20대의 끝자락에 대한 기억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고, 무엇을 잘하는가. 그리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이며 나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평생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나에 대한 사소한 질문들. 20대가 저물어가는 무렵 비로소 나는 내 안에 소리를 듣고자 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띄워둔 노트북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보다 머리를 쥐어뜯고, 뜯긴 머리 식히려 바람 쐬러 동네를 한 바퀴를 걸었다. 그래도 답을 찾지 못해 근처 편의점에 들러 천 원짜리 아이스커피와 로또 한 장으로 사치를 부리고, 연석에 쪼그려 앉아 별 볼일 없었던 인생을 되짚어봤다.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은 내 삶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기대'라는 것이 슬며시 번져 나오기도 했다.
하루에 100개가 넘는 이력서를 써넣은 적도 있었다. 기업마다 요구하는 이력서 양식도 다 다르고 자기소개서 질문도 다 달랐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많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써냈는지 대단한 집념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취업을 준비하는 또래들은 모두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써내고 있었다. 그때는 그렇게 취업이 어려운 시절이었다. 취업을 포기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취업 준비를 하다 말고 옷장사를 하겠다며 동대문으로 향하는 친구도 있었고, 공무원 준비로 전향하여 노량진으로 향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을 돕는다며 고향으로 향했던 친구도 있었다. 시대가 그런 것인데 우린 모두 '스스로의 못남'을 탓했다.
현재 재직 중인 회사는 나의 다섯 번째 회사이다. 대기업이고 금융회사다. 계약직으로 입사했지만 결국 정규직 전환까지 이루어 냈다. 자랑을 하고자 꺼낸 이야기는 아니다. 그 과정 속에서 얼마나 많은 좌절과 회의, 기쁨과 성취감을 얻었고 또 잃었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나인 듯 내가 아닌, 나에 대한 이야기로 자기소개서에 나 자신을 소개했다. 이력서는 사실적인 부분만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바꿀 수 없지만 자기소개서는 다르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사실을 다르게 해석이 가능하다. 별 볼일 없는 인생도 의미 있게 써 내려갈 수 있다. 분명 나에 관한 이야기가 맞지만 왠지 나에게도 낯설게 느껴졌다. 때문에 면접이라도 잡히는 날이면, 제출했던 자기소개서를 찾아 달달 외워가야 하는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를 찾아 떠난 여정은 여러 종류의 감정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하루 평균 100개의 기업에 지원서를 제출해도 한 곳도 서류 합격 연락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너무나도 흔하다. 시간은 낭비했지만 좌절감이 드는 정도는 아니다. 그러다 어떨 때는 몇몇 회사에서 연락이 온다. 대부분 규모가 상당히 작거나, 불특정 다수를 통해 영업 실적을 올려야 하는 직무 거나, 잦은 야근과 격무로 힘들 것이 뻔해 보이거나 그마저도 버틸만한 회사의 비전이 보이지 않거나였다. 그리고 그런 회사와 직무는 하나 같이 매우 낮은 연봉으로 귀결되었다. 그런 합격 통보를 받으면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내가 이것밖에 되지 않는가.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것은 정녕 욕심인 건가. 그동안 꿈꿔 왔던 직장인의 모습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엄청난 괴리감으로 나를 괴롭히고 좌절하게 만들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그런 회사에 왜 지원서를 넣었냐고. 안 갈 거면 안 넣으면 되지 않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것저것 가릴 시간도 여유도 없다고. 내 수준이 그것밖에 안된다면 그런 회사라도 가야지. 그런 일이라도 해야지. 별 수 있냐고.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회사 없고 위대하지 않은 직무도 없다. 단지 지금까지 학업과 취업에 들였던 돈과 시간, 노력에 대한 보상이 적당한 값을 치르지 못하는 것 같아 미련이 남아서이다. 어쨌든 나는 지푸라기든 뭐든 잡아야 했다.
아쉬운 쪽은 항상 취준생이었다. 약자고 을이다. 나 같이 가진 능력과 스펙은 없고 욕심만 가득한 취준생은 특히 더 그러했다. 면접까지 가서도 나는 면접장 구색 맞추기 용으로 인원수 채우기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건 질문의 수준과 횟수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답을 할 때 면접관의 시선과 표정으로도 알 수 있다. 형식적인 질문에 실망하지만 당당한 자세로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리고 면접을 마치고 나오면서 괜히 열심히 했나 싶은 민망함이 다가와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기 일쑤였다.
사실, 그 정도도 양반이다고 볼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지원자가 없는지 면접 도중 나가버리는 임원 면접관도 많았고, 최종 결정권한을 가진 면접관이 갑작스러운 일정이 생겼다며 아예 참석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담당부서에서 대리급 한 명과 사원 한 명이 면접관이라며 면접을 진행했었다. 입사를 지원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무안하고 수치스러웠다.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으니 아무나 와서 대충 시간이나 때워준 느낌이었다. 나는 휴가까지 써서 어렵게 참석했는데 그들은 너무 쉽게 생각한 듯하다.
그리고, 때로는 사적인 질문과 개인적인 지역감정으로 면접장에서 공개적으로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리는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웃으면서 받아치기도 했지만, 대부분 찍소리도 못 내고 비웃음을 사는 경우가 허다했다.
더 최악은 면접까지 잘 보고 나왔다고 생각했고, 최종합격 연락도 받았다가 며칠 뒤 합격을 무기한 미루자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해당 직무에 인원이 부족하지 않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뭔가 대답이 시원찮고 얼버무리는 것이 분명 낙하산을 탄 다른 지원자를 꽂아주어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 몇몇도 심심찮게 겪어본 일이다. 심지어 나는 두 번이나 겪었었다. 이것은 애석하게도 대한민국 대기업과 중견기업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취업시장의 현실이다. 기쁨을 줬다가 두 배, 세배 짜리의 박탈감으로 약자인 취준생들을 뭉개버리는.
분하고 황당하지만 이럴 때마다 우린 항상 우리 자신을 탓하게 된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을의 인생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