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 계약직 사원.
회사에서는 나는 대내외적으로 '안대리'라고 불린다. 적지 나이 탓도 있겠지만, 나름 나에게도 경력이란 게 있었다. 보잘것없지만 말이다.
벌써 5년째다.
들으면 누구나 아는 회사에 다닌다.
계약직으로 2년을 채우면 계약해지 또는 정규직 채용이겠지만 나는 무기계약직이 되었다.
'정해진 기간이 없다라...'
좋은 건지 좋지 않은 건지 사실 잘 모르겠으나, 끝을 알 수 없다는 건 뭔가 불안한 미래를 안고 사는 기분이다. 무한정 알 수 없는 시간들 속에서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끝이 좋지 않게 닿을지 그 누가 알겠는가.
삶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고 쥐고 흔들리는 삶. 성공한 삶 같지는 안다.
내 미래를 내가 알 수 없다니.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남편 혹은 남부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은 로망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아등바등 버텼고, 시키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번거롭지만 티가 나지 않았던 일, 귀찮은 일, 다른 사람을 돋보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들을 하면서 견뎠다. 나중에 라도 우리 팀장이나 부서 임원이 '궂은일을 안대리가 도맡아 했다.'라고 알아주길 은근히 바랐다.
나는 직책자들에게는 잘 보이려고 자신감이 넘치는 척, 아무 문제없는 척, 사람 좋은 척, 감정의 가면을 쓰고 다니기도 했다. 정말 내 실제 성격과는 맞지 않은 일이었다.
사무실 곳곳에서 "안대리", "안대리", "안대리".
거래처에서도 "안대리님", "안대리님", "안대리님".
그렇게 나는 안대리가 되었다.
그래도 그 간의 노력들이 헛되이 지는 않았나 보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면접을 위해 준비해 갔던 실적 보고서와 경력들을 나열해 보니, 꽤 괜찮았다.
"전환되고 나서 다른 회사 정규직으로 지원하면 안 돼~"
인사부서 임원분이 농담처럼 내게 당부를 건네었다.
그래서 마치 이 회사가 나의 운명과도 같았고, 이 회사가 인생에서 마지막 직장이 될 것임을 결심했었다며 면접관들 앞에서 다짐을 보였다.
그리고 3년의 시간 지나 그때의 다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직이 아닌 퇴사로 말이다.
성공했다 함은 당연 '하고 싶은 일'로 이루어내는 것이지.
이제 곧 마흔이 되어 가는데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을 해야겠다 싶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 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보려는 미련스러운 두려움들.
그것을 극복할 용기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내 인생이 기약 없는 계약서 한 장에 맡겨진 그 기분. 그것을 넘어설 용기가 나에겐 있을까.
나는 용기를 내어... 아내 앞에서 '퇴사', '퇴사'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가 생기게 되었다.
퇴사를 잠시 보류되었지만, 육아휴직이란 카드가 생겼다.
축복 같은 기회가 찾아왔지만, 육아휴직이라는 게 하고 싶었던 일에 성과를 거둘 만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통장 잔고가 허락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첫째 아이를 키웠던 경험상, 갓난아기를 돌보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육아휴직이 끝나갈 때쯤이면 나는 무엇을, 얼마나 이뤄냈을지 궁금하다. 아무것에도 닿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
나는 이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안대리'라는 필명으로 늦은 시간까지 타자를 치고 있다.
그리고 이 타이핑이 향하는 끝은 알 수 없다. 마치 나와 내 마음속의 자아가 맺은 무기계약 같은 거겠지.
그리고, 아무튼 나는 퇴사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