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의 학업 실패의 역사(1)

실패 교과서

by 안대리

수능을 친지가 20년이 다 되어간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라떼는...


아무튼,

그때의 분위기는 대한민국에서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공부였고, 학벌은 곧 성공이란 공식이 존재했다.

그래서인지 그 당시에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책이 유행했고, 우리 집 책꽂이에도 꽂혀 있었다. 당시의 시대상이 잘 반영된 내용이라 그런지 학창 시절 성적표를 받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버지는 내 책상 앞에 그 책을 말없이 놓고 가셨다. 고생하고 싶지 않으면 할 수 있을 때 공부해라는 아버지식 무언의 압박 같은 것이었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고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학업이다. 학업에서 꼬여버려 인생도 꼬여버린 것 같다. 그만큼 들였던 에너지가 상당했지만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이 끝나버렸다. 내 '인생의 핑곗거리' 중에서 가장 씹을 것이 많은 주제이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나의 학업 실패의 역사'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상당히 줄여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은 '공부는 자기가 알아서 해라'라는 주의셨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게는 형이 한 명 있는데 어릴 적부터 머리가 좋아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웬만큼 좋은 성적을 받아왔었다. 시키지 않아도 스로로 알아서 찾아서 배우고 공부하던 형 덕에 부모님은 나 역시 그런 아이인 줄 아셨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교육 철학에 '나'라는 복병을 만났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공부가 말썽이었다.

초등학교 입학식을 이틀 남겨두고 아직 한글을 떼지 못했다는 사실에 부모님은 큰 충격을 받으셨다. 자세히 말하자면 '기역, 니은'도 몰랐다.

입학식 전 이틀 동안 어머니와 단기 속성으로 한글 공부를 시작했고, 가르치는 내내 어머니는 화를 많이 내셨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화가 많이 나 계신 모습을 본 것은 그날이 유일했다. 가르쳐보니 우리 집 둘째 아들이 생각보다 멍청하다는 것을 느끼셨던 것 같다. 많이 답답하셨을 것이다.


그럭저럭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하게.

학교 성적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서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아마 반에서 중간 어귀쯤 했을 것이다. 요즘처럼 초등학교 성적까지 신경 쓰던 시절은 아니었다. '개근상'이 제일 중요했던 시절이다.


중학교 역시 입학할 때는 중간 정도의 성적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 줄곧 뒤로 밀려났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 다른 친구들보다 등수가 밀려났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자존심 상하게 했다.

성적은 심각할 지경에 이르렸고, 어머니는 교육 철학을 깨고 아버지를 겨우겨우 설득해 부산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학원에 등록하러 갔다.

집을 나서면서 가족들과 '그 학원 다니면 바로 성적 오른다더라', '이제 정말 열심히 하자', '전교 몇 등 안에 들자', '할 수 있다' 등등 할 수 있는 온갖 파이팅은 다 외치고 나왔었다.


요즘은 대부분의 학원들이 등록 전에 레벨 테스트를 보게 한다. 하지만 그 당시엔 레벨 테스트를 보는 학원이 적어도 부산에서는 몇 없었고, 레벨이 안된다고 그냥 돌려보는 학원도 없었다.

그리고 난 레벨 테스트를 보고 난 후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레벨이 안된다고 그냥 돌려보내는 학원이 있다고 소문만 들었지 내가 당할지는 정말 몰랐다.


그날 저녁식사 시간,

그 사실을 알아버린 아버지와 형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표정으로 '집에서 열심히 하면 되지', '원래 공부는 혼자 하는 거다'라며 안타까움 섞인 태세 전환식 위로를 건네며 찌개를 뜨셨다. 모두 오전에 넘쳤던 파이팅 때문에 머쓱해졌다는 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다음날,

나는 라이벌 학원으로 레벨 테스트를 보러 갔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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