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네 몸도 마음도

- 경장편 - #1 (제1장 불미스러운 일)

by Johann

[시작하며...]


이 땅의 모든 직장인들. 다른말로 현대판 노예. 그들은 하루 24시간 가운데 어쩌면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조직내에서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 보다 직장동료 얼굴보는 시간이 더 많다.

어쩔땐 야유회란 명분으로 가족들과도 함께 가보지 못한 좋은 곳으로 놀러도가고, 또 어쩔땐 회식이란 명분으로 가족과도 함께 먹어보지 못한 고급요리를 먹기도 한다.

이렇게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직장동료이지만 조직내에서 갑을관계가 철저히 정해져 있다.


그래서 때로는 을의 입장에선 치를 떨기도 해야한다. 상명하복 조직문화에 길들어져 있으면서 서로 경쟁관계에 놓여있는 이해타산 집단에게 애초부터 '가족'같은 상황을 기대한다는건 무리다.

현대판 노예들의 고충이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직장내에서 하는 일이 고되고 힘들 수 있지만 부족한 부분은 얼마든지 보완해 나갈 여지는 있다.

하지만 직장내 대인관계의 갈등은 답이 없다. 상처 봉합이 그만큼 힘들다.

특히 조직에 반대 목소리를 내거나 동화되지 못하면 함께 할 수 았는 기회가 좁아진다.

심지어 조직에서 제거의 대상이 될 위험마저 있을 수 있다.

어느 누가 조직을 상대로 '지적질' 하려면 그자는 그냥 죽기를 각오해야만한다.

실수와 잘못을 인정안하려는 습성을 가진 조직은 노예가 버르장머리없게 나대는걸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직장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들은 의외로 비일 비재하다.

직장내 성희롱과 성추행 심지어 성폭행도 그러하고, 남의 성과 가로채기도 그러하다. 코흘리게 애들이나 학교에서 할법한 직장내 왕따와 괴롭힘도 제외하면 섭하다. 또, 인간말종같은 자가 조직내 중요 요직에 앉아 갑의 위치에서 인사권을 갖고 칼춤을 추는일도 더러있는 일이다.


여기 소설 속 등장인물들 가운데 직장내에서 위에 열거한 짓을 행하는'쓰레기' 같아보이는 인물들이 몇몇 등장한다. 한편 이윤추구 집단의 보이지 않는가운데 피튀기는 경쟁관계와 갑질의 피해 속에 쓰러지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어쩌면 오늘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을 쓰러트리는 우리가 그 '쓰레기' 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소설 속 주인공 '나'는 과연 어느쪽일까?





[목차]


제1장. 불미스러운 일

제2장. 타나토스(Thanatos)

제3장. 그림자

제4장. 갑질

제5징. 불가항력(不可抗力)

제6징. 위험한 카르텔(Kartell)

제7징. 기득권 속으로

제8장. 어두움 그 별빛





제1장. 불미스러운 일


크리스마스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후배 H의 죽음을 알게 된 건 회사 출근 준비를 하면서였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고 집에서 회사까지 어떻게 운전하며 왔는지 그저 얼떨떨하기만 하였다.

회사 로비에 들어가자마자 안내 데스크에는 겨울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짧은 치마에 얇은 정장 유니폼을 갖춰 입은 두 명의 여자 연예인이 출근하는 직원들과 마주칠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일일이 배꼽 인사를 하며 ‘좋은 아침입니다’를 열심히 외치고 있었다.

한 명은 인기 가수였고, 또 한 명은 인기 영화배우 겸 탤런트였다.


그들은 우리 회사와 전속모델계약을 맺고 일시적으로 안내 데스크에서 오전 출근 시작부터 오후 퇴근 때까지 안내 업무를 맡게 된 4D 입체영상의 모델들이다.

실제 인물이 아니었다.

디지털 홀로그램을 뛰어넘어 초극강 디지털 홀로그램을 구현하면서부터 단순히 빛의 간섭으로 만들어 낸 형상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모델들의 이미지 그대로를 현실 공간에 나타내주면서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향수 냄새까지 은은히 발산하게 하자 많은 남자 직원들이 별 용무도 없으면서 괜히 안내 데스크를 기웃거리며 무의미한 질문들을 던지곤 하였다.


그동안 줄곧 안내 데스크에서 업무를 맡아 왔던 인공지능 로봇보다는 사람의 형상을 그대로 갖춘 입체영상을 실제와 같이 구현해 놓는 것이 고객을 응대하는 기업으로서는 더욱 친근감 있고 성의가 있어 보였으므로 이를 도입하고자 하는 많은 기업이 관심을 보였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 회사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A그룹이 사업 초기 단계부터 큰 관심을 보였다.


지금 설치된 안내 데스크의 입체영상은 상용화 전 단계에서 회사가 개발한 기술들을 직접 테스트하는 성격이 강했다. 여성 고객이 많은 기업체의 경우 남자 연예인을 모델로 할 수도 있어서 기업 홍보나 이미지 전략으로 활용하며 기업과 고객에게 큰 만족을 줄 수도 있다는 이점 때문에 이미 상용화 전 단계인 초기개발단계에서부터 언론과 세간의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던 터였다.


내가 안내 데스크를 지나가자 잠시 나와 함께 눈이 마주쳤던 그녀들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데 언제 맡아도 새롭고 기분 좋은 그녀들만의 은은한 향수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며 잔향을 남기고 있었다.

보안 게이트를 막 통과하려는 찰나에 누군가 다급하게 내 등을 툭 쳤다. 후배 H와 평소에 친하게 지냈던 직원이었다.


“혹시 소식 들으셨어요?”


아침 인사도 없이 느닷없이 등 뒤에서 다급히 나타나서 하는 말치곤 뜬금없다고 느낄 틈도 없이 그는 나와 같이 보안 게이트를 나란히 통과하며 넌지시 지나가는 말처럼 말을 했다.


“H가 어젯밤에 죽었대요.”


부고 소식을 받아 이미 알고 있던 나는 사망원인이 궁금하였다.


“혹시 심장마비였나?”


그는 나에게 바짝 다가온 뒤 이번에는 귓속말로 말을 건넸다.


“자신의 차 안에서 자살……. 이라고 하던데요.”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가 죽었다는 현실을 도무지 인정하기 싫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에게서 이상한 조짐을 처음 감지했던 것은 바로 몇 달 전의 일이었다.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간 그가 느닷없이 연락을 해왔다.


“형, 나야!”


H는 직장 내에서 편하게 말을 놓으며 나를 어렵지 않게 대하는 후배 직원이었다.

나이로 보나 직급으로 보나 내가 그보다 훨씬 선배였으나 H는 나를 친형 이상으로 살갑게 대하곤 하였다.

하지만 병가 중이었던 그의 음성은 많이 우울하게 느껴졌다.

옆에서 곤하게 자는 아내가 깰까 봐 얼른 거실의 베란다로 살며시 나왔다.


“어쩐 일이야 이 늦은 시간에. 몸은 좀 괜찮고?”


“아프네. 몸도 마음도…….”


“그러니까 술 좀 작작 마실 것이지.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그게 뭔 일이냐. 팔에 깁스한 것은 좀 어때?”


H가 길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귀에 전해졌는데, 아마 그것이 한숨이 아닌 담배 연기를 내뿜는 것 아닌가도 싶었다. 그리고는 무언가 한 모금 넘기는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너, 지금도 한잔하고 있니?”


“응, 취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잠을 못 잘 것 같아. 부러진 뼈는 다시 예전처럼 멀쩡하게 붙어 치유되겠지만…….”


그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체념한듯한 기운 없는 목소리로 아주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상처받고 부러진 내 마음은……. 이건 아무리 뭘 해도 치유가 안 될 것 같아. 영원히…….”


“…….”


“그 인간들, 도저히 용서가 안 돼!”


“그렇게 감정적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잖아. 회사가 저런 식으로 나오니 너도 이젠 법에 맡기면서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할 것 아냐? 변호사는 선임했어?”


“벌써 했지. 그런데 A그룹 회장이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선임한 변호사가 무려 스무 명이고, 회사 법무팀이 선임한 변호사도 다섯 명이나 되더군. 하나같이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야. 인당 수임료가 아마 모르긴 해도 기본 천만 단위에서 시작할 거야. 그에 비해 난…….”


그가 긴 한숨을 한번 쉬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까지 대출로 살아온 인생이 돈이 어딨겠냐고. 소송도 다 돈이야. 인터넷 뒤져서 적당한 변호사 한 명 선임했는데 수임료가 만만치 않더군. 소송은 돈 많은 놈이 조금이라도 더 유리해.”


그의 말이 아주 많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변론도 한 사람이 하는 것보다는 그 이상이 했을 때 상대방을 압박하는 전략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노릇이고, 아무래도 공격과 방어를 하기에 적은 수보다는 큰 수가 유리했다.

대형로펌의 조직적인 대응은 예나 지금이나 돈 없는 자들에게 위협적인 존재 그 이상이었다.

상황이 그렇다고는 하여도 H의 부정적인 말은 너무 극단적으로 내 귀에 전해졌다.


“너무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지는 마. 조직적으로 작정하고 달려들더라도 거짓은 진실을 못 이기는 법이야.”


“나도 형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냥 좀 힘드네.”


H가 다시 술 한잔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듯 잠깐의 침묵과 함께 꿀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 나, 복직 안 할 거야. 퇴사하고 싶어. 이제 더는 못 버티겠어.”


“글쎄, 그게 최선은 아닌 것 같다는 말만 우선 해주고 싶다. 많이 힘든 건 알겠는데, 그래도 그 결정은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어.”


그렇게 H와의 통화를 끝낸 후 베란다 창문을 열고 차가운 밤공기를 내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그러면서 밤하늘을 올려본다.


어두운 밤하늘에 어느 별자리에서 빛나는 별인지 모를 별빛 하나가 한순간 내 눈 가득 들어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