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장편 - #2 (제1장 불미스러운 일)
<#1에 이어서...>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에 드디어 H의 부고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뒤늦게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몇몇 직원들은 충격에 휩싸인 것 같았다.
옆자리의 직원이 다른 직원들과 모여 속닥이고는 의자를 굴리며 내 곁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H 부고 뜬 것 보셨나요?
오늘 저녁 퇴근하고 조문하러 가야겠지요?
좀 전에 얘기하다 들어보니 원인이 또 회사 일 때문이라고 그러던데, 아셨어요?
H랑 상당히 친하셨잖아요. 학교 후배던가 아마 그랬지 않았나요?
근데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 회사 차원이 아니라 우리 실 자체적으로라도 빨리 고사(告祀)라도 지내야 하는 건 아닐까요?
벌써 재작년부터 해서 세 명씩이나 연거푸 한 회사에서 자살 사건이 일어난 직장은 아마 우리 회사밖에 없을걸요?
이건 직원들의 문제라기보단 회사 경영진들이 문제라서 그래요. 그렇게 생각 안 하세요?
이런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일단 직원들 입단속부터 시작하고 유가족들하곤 돈으로 합의 볼 생각이나 하고 있었으니 이런 사달이 계속 나는 것 아니겠어요?
회사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근데 도대체 돈을 얼마나 주고 합의하면 문제 생길 법한 일인데도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을까요?
회사 경영진들이 문제를 찾아 개선할 생각은 안 하고 계속 덮고, 덮고 또 덮기만 하니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자꾸 발생하는 거잖아요.
아, 근데 오늘 조문 가신다고 하셨나요?
아니, 내일 가신다고 하셨나요?”
평상시에도 말이 꽤 많은 수다스러운 직원이었다.
질문을 던지고 상대방 답변을 들을 새도 없이 그다음 질문에 질문을 던지고 결국은 본인이 무슨 질문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 사나운 직원의 말에 나는 생각하기도 싫은 그 일이 깊은 땅끝 저곳에서 똬리를 틀며 동면하고 있던 뱀이 스멀스멀 일어나 기어 나오듯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나오려 하고 있었다.
단기계약직 사원으로 새해가 시작되면서 입사했던 N은 붙임성 좋고 쾌활하였으며 그 미모 또한 뛰어났다.
그러다 보니 다른 부서의 남자 직원들이 별 용무가 없었음에도 내가 있는 부서로 쓸데없이 수시로 찾아와서는 별 시답잖은 말을 직원들과 주고받으며 N을 잠시라도 흘낏 보려고 난리도 그런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
상당히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에 업무를 보조해 주는 일 처리 솜씨 또한 빠르고 뛰어나다 보니 우리 조직의 건의를 받아들여 특별채용으로 그다음 해부터 정규직으로의 전환까지 해주어야 한다고 인사담당 부서에 건의가 들어갈 정도였다.
N이 계약직 사원으로 근무하던 그해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매일 같이 오전을 넘기면서 오후로 갈수록 때 이른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는데, 그날 그녀는 카디건을 걸친 매우 화사한 원피스 차림으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을 그 누구보다도 일찍 한 상태였고 하나둘씩 사무실로 들어오는 직원들을 볼 때마다 높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마주치는 직원마다 먼저 반갑게 인사 건네기 바빴다.
그리고 처음엔 아무도 그녀가 입은 옷에 대한 비밀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오전 일과에 정신없던 나는 고개 한번 들지 않고 문서작성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내 앞에 앉아있던 후배 H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급하게 나를 부르고 있었다.
“형!, 형!, 고개 잠깐 뒤로 돌려봐!”
“왜?”
“아, 글쎄 일단 돌려 보라니깐! 쟤 어떻게 저런 옷을 입고 출근할 생각을 다 했지?”
뭔 소리인가 싶어 확인하고자 고개를 뒤로 돌렸고 N이 선 채로 책상에서 무언가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누구 말하는 거야?,
N?,
쟤 지금 뭐 하는 건데?”
“그건 나도 모르겠고. 형은 N한테서 지금 뭔가 안 보여?”
그러고 보니 주변의 직원들 모두 서로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한편으로 꽤 즐기는 듯한 눈으로 그녀를 훔쳐보고 있었다.
나만 그것을 모르고 얼굴을 책상에 파묻다시피 해가며 업무에 열중하고 있던 것을 후배 H가 내 시선을 그렇게 돌려주었다.
내가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했을 때 그녀의 얇고 화사한 원피스 안에 은밀히 감추어 있어야 할 그녀의 팬티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긴 카디건을 걸치고 이리저리 돌아다녔을 때는 조금도 눈치챌 수 없었으나 걸쳤던 카디건을 벗은 상태에서 허리를 잔뜩 숙인 채로 서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에 감춰져 있어야 할 그녀의 속옷이 너무나 도드라지게 보였다.
“앞에는 잘 안 보여. 희한하게 저렇게 뒤에만 비친다니까!”
“도대체 저런 속옷은 어디서 구했을까? 와우, 진짜 N은 볼수록 매력이 넘쳐요.”
주변에 직원들 모두 한 마디씩 수군거리며 이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더는 계속 지켜봐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주변의 직원들에게 일에 집중하라고 정색을 하며 한마디 하자 직원 한 명이 키득이며 농담으로 받아넘긴다.
“집중이 잘 안 돼요. 저희보다는 N한테 뭐라 한마디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 옆의 직원도 그의 말을 이어받아 히죽이며 나지막이 한마디 하였다.
“일부러 저렇게 입고 왔으면 대놓고 봐달라고 저러는 걸 텐데. 우리 실에 남자들밖에 없잖아요. 저건 다분히 의도적이에요.”
나는 그 말에 대꾸할 수가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조직 내에 여직원이라고는 그녀밖에 없었다.
다른 여직원들이라도 있었다면 같은 동성끼리 그녀의 복장에 대해 편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어떠한 조치를 하도록 하여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복장 상태가 실수가 아니라면 남자 직원 앞에서 자신의 성적 매력을 도발적으로 발산하여 직장이라는 공적 공간에서 자신만의 우월한 여성적 존재감을 의도적으로 과시하려 했던 다소 과격하고 위험한 행동이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그날 그녀의 복장은 분명히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불편하게 하였지만 남자 직원들이 그녀의 복장 상태를 못 본 척하고 넘긴 것은 그녀의 복장이 실수인지 의도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일부는 어떻게 지적해줘야 할지를 몰라 그랬던 것이고, 또 일부는 오히려 관음을 유발하는 그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점심 식사시간이 돌아오자 그녀는 다이어트 식단을 준비해 왔다며 사무실에 홀로 남았고, 남자 직원들끼리 모인 점심 식사 자리에서 또다시 N의 복장에 대하여 한동안 설왕설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도중 다른 여직원들에게서 볼 수 없는 그녀만의 장점과 친근한 행동에 대해 누군가 먼저 말을 흘리자 곧이어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치기 시작하였다.
“N이 친화력 하나는 끝내주는 것 같아요.”
“나도 인정해. 근데 그건 지나칠 정도로 리액션을 잘해줘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 것 같아.”
“맞아요, 그게 장점이긴 한데, 간혹 그 스킨십 많은 건 오해 살만하지 않아요?”
“별로 웃기지도 않는 얘기를 해줘도 엄청 호들갑스럽게 웃잖아요. 언젠가 손으로 내 팔을 치면서 웃어대는데, 어찌나 아프던지, 그런 건 좀 적당히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긴 들더라고요”
“맞아, 맞아. 웃으면서 팔을 때리는 것도 있지만 어깨에 손을 얹는데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나는 반대로 아무리 친한 여자한테도 그렇게는 못 하겠던데. 여자들도 그냥 알고 있는 사이일 뿐인데 남자가 말하면서 신체접촉하는 그런 걸 좋아하려나?”
“그러지 마. 그건 누가 봐도 성추행이야.”
“그럼, N이 하는 건 성추행이 아닌가요?”
잠깐 침묵이 흘렀는데 그때 누군가 “당하는 사람이 좋게 느끼면 아니야.”라는 말에 그런 논리가 어딨냐며 야유가 쏟아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또다시 누군가 한마디 더 이어나갔다.
“근데, 그것보다 더한 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말할 때, 마치 습관인 것처럼 상대방 허벅지에 손을 은근슬쩍 갖다 대는 거죠. 쓰다듬기까지 하면서…….”
누군가 던진 이 한마디에 식당에 앉아있던 직원들 모두 일순간 침묵하며 그의 얼굴을 주목하였다.
아니, 말초신경을 자극할 수 있는 좀 더 자극적인 얘기를 더 구체적으로 최대한 더 해달라는 무언의 압박과 함께 그의 입술을 주목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말을 꺼낸 직원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와 함께 경력사원 입사 동기인 Y 실장은 N을 면접하여 채용한 당사자였고, 직원들이 몰랐던 사실을 자랑스레 떠벌리기 시작했다.
“그런 N을 내가 뽑았다는 거잖아. 그때 J 부서장님 하고 같이 면접관이었는데, 최종 선발 과정에서 두 명으로 추려졌거든, 근데 J 부서장님은 N을 탈락시키려 했어. 이유가 뭔지 알아?
너무 지나치게 예쁘다는 거야. 우리 부서에 데리고 있기에…….
직원들이 업무 하는 데 있어서 방해된다나 어쩐 데나. 결국엔 내가 설득해서 채용하게 된 거라고.”
모두 Y 실장의 말에 ‘훌륭하십니다!’를 외치며 계약직으로 하기엔 일도 너무 야무지게 잘하니 정규직 전환을 추진해 달라고 이구동성으로 Y 실장에게 요청하였다.
“다들 그렇게 평가하는구나. 나도 마찬가지야. 부서장님한테 잘 한번 말해 볼게.”
그렇게 점심시간이 지나갔다.
그때 나눈 그녀에 대한 설왕설래가 나는 은근히 못마땅하였다.
왜냐하면, 그녀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 일 잘하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결론 난 것이 아니라 여자로서 예쁘고 그래서 남자의 눈을 즐겁게 해 줌과 동시에 은근히 사람을 설레게도 하는 언행을 더 높이 평가하여 오래도록 옆에 두고 싶다는 식으로 농담을 가장한 진담이 오고 갔기 때문이었다.
물론 일을 야무지게 잘한다는 말도 나오긴 했으나 보조 및 지원업무였던 관계로 대단한 전문성을 요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어느 여직원이 그 일을 맡든지 간에 충분히 다 잘할 수 있는 업무를 그녀가 하는 것이었기에 그녀에 대한 평가가 일보다는 외모에 더욱 치중했던 것을 부인하기 힘들다.
남자든 여자든 일을 하는 직장에서는 오직 일로서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나로서는 그렇게 직원들이 나눈 대화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N이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업무능력만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외향적 성격과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언행, 그리고 무엇보다도 뛰어난 미모와 함께 다른 여자들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그 우월한 성적 매력으로 상대 평가하려 했던 동료직원들이 여간 못마땅한 것이 아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