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진실은

- 경장편 - #3 (제1장 불미스러운 일)

by Johann

<#2에 이어서...>


그날 오후 업무가 한참 시작된 후 아무도 없는 탕비실에서 뜨거운 차를 우려내고 있을 때였다.

N이 탕비실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와 단둘이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가 탕비실에 수시로 갖춰 놓는 물품의 재고를 파악하고 있는 듯 부산스럽게 찬장과 냉장고를 여닫으며 무언가 열심히 체크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힐끗거리며 보았다.

여전히 그녀의 뒷모습은 보기 민망하였다.


“탕비실 구비 물품 확인하여야 하는데, 혹시 뭐 드시고 싶은 것 있으시면 말씀만 하세요.

이따가 주문 넣을 때 함께 주문해 드릴게요.”


그녀의 밝은 목소리에 나는 흠칫 놀랐고 몰래 나쁜 짓이라도 하다가 걸린 아이처럼 애써 놀란 표정을 감추려 애쓰고 있었다.


“아, 아니, 아니야.”


“아유, 괜찮아요. 말씀만 하세요. 제가 다 사드릴게요. 이번 달 들어온 비용 아직 많이 남았는데.”


그러고는 마냥 웃는다.


그녀와 오늘 처음으로 서로 마주 보며 서 있게 되었고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가 입고 있던 원피스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동료직원들이 말했던 대로 역시 앞에서는 그녀의 속옷이 전혀 비쳐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씩 웃었다.


“제 옷 예쁘죠?

지난 주말에 쇼핑 가서 구매했어요. 이래 봬도 신상이에요. 보자마자 바로 내 옷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늘 처음 입고 온 건데…….”


내 바로 앞에 서 있던 그녀는 자기의 전직이었던 패션모델로 돌아간 듯 갑자기 양팔을 활짝 벌린 채 뒤로 두세 걸음 물러났다가 내 앞으로 씩씩하게 다가오면서 상체를 오른쪽으로 홱 틀었고, 그와 동시에 머리를 아래에서 위로 재빨리 들어 올리며 패션모델의 흉내를 과하게 내었다.

그러는 순간 글램펌을 한 그녀의 긴 머리가 진한 샴푸 향을 남기며 내 뺨을 강하게 때렸고, 순간적으로 따끔함을 느낀 나는 나도 모르게 그만 “앗!” 하는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그녀의 옷매무새를 그녀가 눈치채지 않도록 재빨리 보려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런 나를 눈치채고 있었다는 것이 여자의 신체를 힐끗 훔쳐보려 한 음흉한 남자로 오해받는 것 같은 느낌이 더욱 부끄러워 머리카락에 맞은 나의 뺨이 얼얼한지도 모르고 있었다.


“어머. 어떡해. 죄송해요.”


순간 굳은 표정으로 그녀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놀란 듯 말하였지만, 초롱초롱해진 눈을 연신 깜박거리면서 말하는 입을 보았을 때는 하나도 죄송해 보이지 않았다.

잘못에 대한 진지한 사과의 말이라고 느낄 수 없었던 건 그녀의 입꼬리가 위로 씰룩이며 금방이라도 큰 웃음을 터트릴 기세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가 정색하며 화낼 일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한 듯하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내가 곧바로 장난기 있게 화답을 해줄 필요가 있었다.


“평상시 나한테 불만이 많았구나.”

“예? 아닌데.”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박장대소를 하였다.

그 정도까지 웃을 일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것이 평상시 그대로 그녀의 모습이었다.


“많이 아프시죠?”


그녀는 웃음기 섞인 말투와 함께 채찍질하듯 스쳤던 내 뺨을 그녀의 두 손으로 어루만졌다.

나는 화들짝 놀라 괜찮다는 말과 함께 한걸음 뒤로 물러났고 차라리 그녀의 복장 상태에 대해 지금이 말해 줄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입은 옷, N한테 진짜 잘 어울려.”


“아, 정말요?”


“근데, 이 상태에서 조금 더 근사해질 수 있는 코디를 추천해주고 싶은데…….”


“와, 말해주세요, 뭔데요?”


그녀가 매우 환히 웃는 얼굴로 귀엽게 좌우로 어깨를 들썩이며 나를 채근하고 있었다.


“카디건을 걸치거나…….

아, 그래, 실내에서 입었을 때 더우면 허리에 그냥 매어도 좋을 듯해.

그러면 아마 더 잘 어울릴 거야. 이 원피스가 카디건 하고 왠지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


“어머,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그러지 않아도 오늘 아침에 나오는데 날씨가 약간 쌀쌀하더라고요.

그래서 카디건 걸치고 나왔는데, 이따가 자리에 가서 허리에 한 번 매어봐야겠다.”


“나 말고 다른 주변 사람 얘기도 좀 들어보면 더 좋을 거야. 아무래도 우리 실엔 남자만 있으니 남자들보다는 다른 여직원들에게 평가해 달라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겠네.”


나는 N의 원피스가 구매한 지 얼마 안 되는 새것이며, 오늘 처음 착용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옷이 비춤이 심하다는 것을 잘 모를 수도 있겠다는 가정에 더 큰 확신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날 탕비실에서 나와의 대화 이후 나는 N이 퇴근할 때까지 허리에 카디건을 계속 메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직원들은 못내 아쉬워했지만, 그날 이후로 N은 두 번 다시 그 원피스를 회사에 입고 출근한 적이 내 기억으로 그 후로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 그녀의 회사 생활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던 것은 P가 그녀에게 의도적인 접근을 하고부터였다.


P는 N이 속옷이 비치는 원피스를 입고 왔던 날 그녀가 빠진 점심 식사 자리에서 그녀가 은근슬쩍 자신의 허벅지에 스킨십을 시도한다고 말했던 바로 그였다.

P는 우리 부서의 막내 직원이었는데 회사 전체적으로도 모든 남자 직원 사이에서 가장 잘생긴 외모를 가진 자였다.

순수 조각 미남. 이 단어 한마디로 그의 외모에 대해 그 어떤 화려한 수식어를 가진 평가도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그의 훤칠한 키와 준수한 외모, 그리고 옷 잘 입는 센스 등 보이는 면만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유능한 일 처리 능력은 항상 상사들의 신임과 칭찬을 듣는 데 충분했지만, 문제는 그가 이직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몇 개월 전부터 계속 돌고 있었다는 점이다.

본인은 극구 부인했으나 경쟁사로 스카우트되어 간다는 소문이 사실처럼 퍼지자 윗선에서는 그의 퇴사를 막기 위해 Y 실장에게 특명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N이 P와 사귄다는 말이 부서 내에서 돌기 시작하였다.

처음 그 소문은 그리 심각한 정도가 아니었는데 나에게 완전히 다른 사실을 전한 후배 H가 격분하며 P가 N을 회사 밖에서 개인적으로 만난 것을 놓고 격하게 힐난하였다.


“완전 쓰레기 같은 새끼야. 적어도 그 자식은 그랬으면 안 됐어. 절대!”


후배 H가 그토록 열을 내며 비난을 쏟은 이유를 난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P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약혼녀가 오래전부터 있었기 때문이고,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그녀를 진지하게 만났었다면 그것은 비난받을 만한 충분한 사유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소문으로 전해 들었던 얘기는 그렇게 비난받을 정도가 아닌 선에서 조용히 마무리될 사안이었는데 H가 나에게 전해준 말은 완전히 달랐다.


“너무 단정 짓는 거 아냐?

서로 사귀었던 정도는 아니고 그냥 친한 직장 선후배, 오빠 동생 사이로 회사 밖에서 같이 식사한 것이 회사 직원 눈에 띄고부터 와전된 거라 들었는데.”


“그게 아냐!

나도 첨엔 그렇게 알았는데, 어제 P 하고 단둘이 술 한잔할 기회가 있었거든.

글쎄 이놈이 술 몇 잔 들어가고 꽤 취하더니만 N 하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나한테 전부 불더라고.”

후배 H가 그렇게 말하기 전까지 누구도 P에게 직접 그 일에 대해 들어본 직원은 없었다.

회사에 안 좋게 소문난 뒤 N이 그 일로 장기간 휴가에 들어갔고, Y 실장은 N과 개별 면담을 하였다.

그 후 직원들에게는 P가 N을 그냥 직장 후배이자 좋은 동생으로 생각하며 어느 여직원들에게나 항상 그리해왔듯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 주며 식사 한 끼 밖에서 사주었다는 것이 전부라고 전하였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말을 만들어서 와전시키지 말고 더는 문제 되지 않도록 직원들 입단속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N은 이 일과는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휴가를 간 것이라고 전하였다.

나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이 일리 있었던 것이 P의 외모만으로도 모든 여직원이 그에게 호감을 보였던 것을 나를 비롯해 많은 직원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회사에서 모든 여직원에게 치근대거나 하는 모양새를 전혀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항상 예의 바른 잘생긴 남자 직원 정도로 인식이 되었는데, N과의 외부에서의 사적인 만남이 오해를 키워 버렸던 것으로 나 역시 결론 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적어도 N을 그동안 봐온 우리 부서의 직원들 모두 P보다는 N에게 더 의심의 눈초리를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N이 먼저 P에게 꼬리를 쳤고, 더구나 P가 곧 결혼할 약혼녀가 있음을 알고서도 접근하여 그를 어떻게든 차지해 보려고 시도하다 P가 거기에서 선을 긋고 만남을 회피하자 N이 지금도 몽니를 부리며 어떤 계략을 꾸밀지도 모른다는 소설 아닌 소설을 서로 이어가며 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N에 대하여 갖고 있었던 호감이 급감하였고 이제는 휴가에서 복귀시키지 말고 이대로 권고사직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말까지 나오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후배 H가 전한 말 대로라면 N은 피해자일 뿐이다.


“P 말로는 N이 우리 부서로 들어온 이후 N이 줄곧 자기를 유혹했다는 거야.

그러다가 몇 개월 전부터 본격적으로 사적인 만남을 갖게 된 거고.”


“그래서?

서로 좋아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그 새낄 쓰레기라고 하는 거지. 아무리 N이 그렇게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놈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지. 더구나 그렇게 되기까지 약혼녀가 있다는 말을 꺼내지도 않은 모양이야. N의 가정형편이 거지 같고 자기와 격이 맞지는 않지만, 그냥 데리고 놀기엔 약혼녀보다 더 좋다며 히죽거리고 웃는데, 아, 진짜 몇 대 쥐어패고 싶더라고.”


“N은 그 사실 알고도 계속 P가 좋다고 쫓아다녔던 건가?”


“그건 아니더라고.

나도 그걸 물어봤는데 오히려 P가 N을 집요하게 계속 사적으로 만나려고 했고 N은 계속 거부했던 모양이야. 약혼녀가 있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듣고 N이 P를 추궁했는데 결국 P가 실토한 거야.

그 뒤 엄청난 충격을 받은 모양인 것 같아.

처음부터 자기가 솔직했더라면 N이 거부했을 거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더라고.”


후배 H가 전한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이것은 묵과할 가벼운 사안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나는 Y 실장과 이 문제를 의논해 보기로 했고, 조그만 회의실에서 테이블을 놓고 그와 서로 마주 앉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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