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그만좀 내렸으면

- 경장편 - #22 (어두움 그 별빛)

by Johann

<#21에 이어서...>


8. 어두움 그 별빛


밀폐된 차 안의 히터가 내부 공기를 빠르게 올려놓으며 내가 내뿜는 호흡과 함께 산소를 조금씩 뺏어가고 있었다.

한순간 견디기 힘들게 숨이 막혀왔다.


살짝 운전석 창문을 내리자 신선한 공기를 타고 눈발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례식장 주차장에서 나는 빠져나올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H가 나를 가지 못하도록 계속 붙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문자 메시지가 오는 알람 소리가 울렸다.

아내였다.

유례없던 폭설이 내리는데 늦은 귀가에 염려하는 문자 내용이었다.

나는 곧 들어가겠다는 문자회신을 바로 보내 주었고 그동안 확인해 보지 못했던 이메일로 이동하였다.


업무상 주고받는 회사 이메일만 신경 쓰다 보니 그동안 엄청나게 많이 쌓인 개인 전자메일함을 소홀히 하였었다. 일일이 확인해 나갔지만 그다지 회신이 요구되는 메일은 한 통도 없었다. 불필요한 수신 메일들을 하나씩 지워 나가던 중 뜻밖에도 H가 사망하기 바로 얼마 전 나에게 보낸 이메일 한 통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열자 하나의 녹음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

그 녹음파일명은‘비품창고 안의 비밀대화’였다.

그가 무엇 때문에 위협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녹음파일을 공유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혹시 기자가 나를 찾아오면 협조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제야 좀 전 장례식장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그 기자와 대면한 일이 떠올랐다.

느닷없이 내 앞에 나타난 그녀는 자신의 기자신분증을 나에게 들이밀면서 H가 자신에게 연락이 안 닿으면 나를 찾아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경황이 없었기도 했거니와 H가 왜 나에게 기자를 보내려 했는지 그저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거짓 약속한 뒤 자리를 황급히 피했었다.


H가 나에게 이메일을 보낸 날짜를 확인했다.

그가 수십 차례 나에게 전화 연락을 해왔지만 내가 그를 의도적으로 피했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

이메일로 핵심증거 파일을 나에게 보냄으로써 그가 끝까지 나를 믿고 신뢰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더욱 쓰라려 왔다.


그날 저녁 그 바에서 J 부서장의 은밀한 제안이 있고 난 뒤 나는 그가 요청한 기한 내에 그가 원했던 대로 진술서를 작성하여 이메일로 보내 주었다.


그 진술서는 변호사들에 의해 악의적으로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졌고 최종적으로 나의 서명을 끝으로 법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변론기일 전에 H가 회사 측의 서면을 검토하면서 나의 진술서를 읽었다.

그날 이후 그가 나에게 계속해서 연락을 해왔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그와의 통화를 거부했다.

그렇게 나는 그와의 모든 연락을 완전히 끊어버린 것이다.


그가 보낸 녹음파일을 들어보려 했지만 약간의 망설임이 들었다.

잠시 후 나는 그 첨부파일이 들어있는 이메일 전체를 완전히 삭제해 버렸다.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H와 작별을 해야 할 것 같았다.

H가 나에게 보냈던 부재중 음성메시지를 하나씩 들어가며 삭제하기로 했다.


“형, 형이 진술서에 쓴 그대로 아직도 나를 채용의 실패라고 믿는 거야?

내가 부서 내 폭탄 돌리기였어?

어디 갈 데 없던 거지 같은 나를 형의 아량으로 품어 주었는데, 내가 그런 은혜를 모르고 형에게 잘못한 건가? 그런 거야?

내가 조직에 지장을 주는 그런 못된 놈이었어?

나를 추천해서 데려온 것을 후회해?

형에게 듣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은데 왜 자꾸 대화를 거부하는 건데?”


“형, 제발 연락 좀 해. 나랑 통화 좀 하자고. 형이 날 배신한 걸까? 회사가 날 배신한 걸까?”


“형, 나 정말 죽을 것 같아. 빛이 하나도 안 보여. 지금 너무 어두워.”


“어디서부터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왜 내가 지금 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냥 죽고만 싶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나와는 달리 Y 그놈은 자기 SNS에 가족들과의 단란한 사진들을 올리면서 자랑질하고, 소소하면서도 행복한 일상이라고 글 올리는 것 보니 토할 것 같아 미치겠어.

난 대체 뭐를 위해 살아온 걸까?”


여러 통의 부재중 통화녹음이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있다 보니 지금 내 곁에서 그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음성을 모두 지웠고 이제 그가 숨지기 전 나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 메시지를 읽었다.


‘난 아직도 형을 믿고 있어.

형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

형의 선택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믿고 싶어.

그런데 내가 계속 살아 있으면 내가 형을 Y 실장하고 J 부서장처럼 대할까 봐 그게 너무 두려워.

내게는 더이상 희망이 안 보이네.

너무 지쳤나 봐.

죽어버린다면 편해질 거란 생각만 자꾸 들어.

난 너무 바보처럼 살았어…….’


그의 마지막 문장이 내 가슴을 후벼팠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견디기 힘들었다.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고자 의자를 뒤로 완전히 젖혀버리고 그대로 누웠다.

눈을 감았다.

그러자 거대한 태풍 하나가 일어나면서 깃털처럼 가벼워진 내 몸을 휘감아 나를 대기권 밖으로 밀어내는 것 같았다.

어두움 속을 한참 떠돌다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 하나를 보았다.

그 별은 뱅글뱅글 돈다고 쉽게 표현도 못 할 만큼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안에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갇혀 그 별과 함께 돌고 있었다.

그러면서 갇혀있던 자들 가운데 움직임을 멈춘 수많은 이들이 원심력에 의해 튕겨 나오듯 그 별에서 떨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강한 자석에 이끌리기라도 한 듯 그들은 그렇게 우주 저 끝으로 사라져갔다.

희한한 광경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그 안에 갇혀 움직이는 모든 사람이 왠지 한심하면서도 가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무엇 때문인지 모르게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쾅 쾅 쾅 하는 거대한 충돌 소리가 연속으로 들렸고 잠시 후 폭탄이라도 터진듯한 엄청난 굉음이 내 귀를 때렸다.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잠시 졸았나 싶은데 사태파악이 안 됐다.

뛰는 심장을 억누르고 간신히 차 밖으로 비틀거리며 나와보니 아직 제설이 안 된 눈 쌓인 교차로에 수많은 차가 뒤엉켜 있는 것이 보였다.


탱크로리 차량에서는 거대한 화염 덩어리가 온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듯이 활활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염 안에서 나는 H를 분명히 보았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H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타나면서 형, 형, 형 하며 나를 다급하게 부르고 있었다.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려보니 수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고 눈 쌓인 도로 위에 널브러져 신음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H의 목소리에 이끌려 신음하는 자들을 향해 서서히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등 뒤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외치는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가요! 거기 가지 말아요!”


“빨리 돌아와요! 또 폭발하기 직전이야!”


“저 사람 지금 왜 저래, 그냥 죽으러 가는 것 같아.”


정신 나간 사람처럼 휘청이며 불길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는 나를 지켜본 사람들이 한마디씩 해가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내 등 뒤에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 발밑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신음과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외면하고 오로지 화염 속에서 나를 애타게 부르는 H의 얼굴을 향해 비틀거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무언가에 놀라 뒤로 넘어졌다.

엄청난 충격이 머리에서 시작되어 온몸으로 전달됐다.

그순간 내 몸 안의 또 다른 내가 쑥 하고 빠져나와 공중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면서 지금까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언어로 여럿이 시끄럽게 말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것은 오디오 파일을 거꾸로 빠르게 재생하는 것과 같이 리버스 사운드(reverse sound)를 듣는 듯하였다. 깊고 깊은 블랙홀이나 어느 심연(深淵) 속으로 빠져들어 가듯이 나는 그렇게 빠르게 끌려들어 가고 있었다. 순간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사이렌 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왔다.


누군가가 나를 들것에 싣고 다급히 구급차로 옮기려 했다.

누운 채로 본 하늘에선 아직도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제는 그만 좀 내렸으면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저절로 눈이 감겼다.


어두움만이 온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는데 저 끝에 별빛 하나가 보였다.


너무나도 아름다워 손을 뻗어 별빛을 움켜쥐어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두움 속 그 한 가닥 별빛은 그렇게 더이상 다가올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듯 내게서 점점 더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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