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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Apr 22. 2024

나의 기타guitar 이야기

- essay -

어린 시절 집에 피아노가 있었다. 

하지만 악기를 제대로 다루는 가족은 없었다. 

나는 기타를 배우고 싶었으나 어머니 등쌀에 떠밀려 전혀 원치 않던 피아노를 배워야만 했다. 

그 기억은 정말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어린이 바이엘이 들어있는 학원 로고가 선명히 새겨진 가방을 동네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가 한 녀석이 내가 피아노 학원에 들어가는 걸 목격하고는 사내자식이 계집애들 배우는 피아노나 배우고 있다고 친구들에게 소문냈다. 아닌 게 아니라 피아노 학원엔 온통 여자아이들뿐이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나는 피아노 건반을 때렸다. 

그리고 무서운 선생님은 대나무 자를 가지고 내 손등을 때렸다. 

그럴 때마다 이놈은 어째 가르쳐도 실력이 도무지 늘지를 않냐는 선생님의 질책이 환청으로 들려오는 듯했다. 왼손과 오른손 스무 번, 서른 번 연습해 오라고 숙제 내주면 학원 가기 삼십 분 전에 한두 번 연습하고 학원으로 향했다. 아예, 연습을 한 번도 안 하고 간 날도 부지기수다. 


억지로 하는 일 치고 제대로 되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실력이 늘지 않는 건 오로지 연습 부족이었다. 당시 선생님도 이를 잘 알았다. 답답한 건 선생님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선생님은 피아노가 싫으냐고 물으셨다. 

‘피아노 대신 기타 치고 싶어요.’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어머니 귀에 들어갈까 봐 목구멍에 그냥 삼켜야 했다. 

수많은 흰색 검은색 피아노 건반 앞에서 기타의 여섯 줄이 선명히 그려졌다. 

기타학원에 다니고 싶었고 기타를 몹시 갖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외가댁엘 방문하고 돌아가던 때였다. 

출타 중이었던 막내 외삼촌 방에 놓여있던 낡은 기타 한 대를 부러운 듯 바라보던 나에게 어머니는 그렇게 갖고 싶으면 외삼촌 몰래 갖고 가라 하셨다. 

잠시 빌려 가라는 말이었겠지만 나는 ‘얼씨구나 땡이로다!’ 쾌재를 부르며 기타를 얼른 집어 들고 외삼촌 오기 전에 냅다 줄행랑을 쳤다. 하지만 연주법을 전혀 모르니 기타는 그저 관상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기타를 내 품에 꼭 끌어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연주하는 그 이상의 기쁨이 느껴졌다. 


악성(樂聖) 루드비히 판 베토벤은 기타를 가장 사랑스러운 악기라고 칭송했다. 

기타처럼 연주자의 품 안에 꼭 안겨서 연주되는 악기도 매우 드물다. 

더구나 기타는 현악기이지만 건반악기처럼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화음 연주 악기다. 

나에겐 그조차도 사랑스러웠다. 

기타는 제작자와 제작방식에 따라 가격에 큰 차이가 있지만 취미생활 정도라면 그리 큰 부담 없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대중적인 악기다. 

문제는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악기이지만 동시에 누구나 쉽게 연주할 수 없는 악기라는 점이다. 


기타를 처음 배울 때 가장 힘든 점은 바로 왼손으로 기타 줄을 누를 때마다 통증이 유발된다는 점에 있다.

클래식기타는 나일론 줄이라 금속 줄에 비해 덜 아프지만 사실 통증 유발에 별반 차이가 없다. 

무수한 연습만으로 그냥 왼손의 검지, 중지, 약지, 소지에 굳은살을 박이게 해서 무르게 하지 않는 방법 외엔 별수가 없다. 기타를 배우다가 중도 포기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바로, 이 과정을 넘기지 못해서다. 

모진 연습 끝에 굳은살이 박이더라도 장시간 연습을 게을리하거나 중단하면 손가락은 다시 원래대로 새살이 돋아 복원된다. 

무술 고단자들이 정권과 손날을 매일 단련하여 굳은살로 단단하게 만들면 손 자체가 무기가 되듯, 기타 연주자는 손가락을 끊임없이 단련하여 연주 도구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고된 이 과정이 싫지 않았다. 

기타 좀 연주한다는 친구들끼리 모이면 서로의 손가락을 만져보며 굳은살의 정도를 파악하곤 했다. 

손가락이 무르면 무를수록 어디 가서 기타 연주한다는 소리를 못 하는 것이다. 


수 주 동안 관상용으로 두던 기타를 연주하려고 서점에 가서 왕초보를 위한 기타 교본을 샀다. 그리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대학 진학 목표가 대학가요제 출전과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서 여학생들 옆에 앉혀두고 기타 치는 것이었다면 제정신이냐 할 것이지만 조금은 그랬고 결국 엇비슷하게 꿈을 이뤘다. 


“선배, 나도 기타 가르쳐줘요.”라고 하는 어느 여후배에게 “아서라, 기타는 말이야, 연주자에게 아픔을 주는 악기란다.”라며 내 왼손가락의 굳은살을 자랑스레 보여줬다. 

대학 축제 기간 캠퍼스 잔디밭 위에 앉아 기타 줄만 튕긴 게 아니라 그렇게 은근히 자만심도 튕겼다. 


또 한 번은 그 당시 서울 시내 어느 라이브 음악 레스토랑에서 시간제 일을 하던 친구를 보러 갔다가 느닷없이 무대에 올랐던 적 있었다. 

그날 저녁 유명 가수가 그곳에 출연하는 날이었는데 그가 나타나지를 않았다. 연락 두절인 상태가 지속되자 아르바이트하는 친구에게 “그럼 내가 시간 좀 때워 줄까?”라고 제안했다. 

그는 곧장 지배인에게 허락받아 나를 무대에 세웠다. 

그냥 농담 삼아 한 말이었지만 난 그렇게 스스로 놀라며 그날 유명 가수 대신 무대 위에서 한 시간가량 기타치고 노래를 불렀다. 

무대에서 기타 연주하는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대학가요제 출전이 남부럽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런 걸 기대 했건만.... 쳇!

내가 한 곡씩 부를 때마다 한 테이블씩 손님들이 일어나 레스토랑을 떠나는 거였다. 

그래도 꿋꿋하게 무대를 지켰다. 

그 유명 가수는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친구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출연 가수가 아직도 연락 두절이라는 그의 말에 “그러면 내가 좀 더 시간을 때워야겠지?”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됐다, 인제 그만 내려오란다.” 


녀석은 이내 한숨 섞인 표정을 지으며 무대를 정리했다. 나중에 친구는 내가 연주하며 노래 부르던 그날 무대 앞 VIP석에서 레스토랑 사장이 지인들을 데리고 와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덮어놓고 나를 무대에 세운 당시 지배인은 그 뒤 무사했는지 잘 모르겠다. 


20년 전 독일에서 구매했던 수제 기타가 있다. 

최근 오랜만에 그 기타를 품에 안았다. 사운드 홀 안을 가득 메우는 마호가니 향이 여전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향이다. 그런데 굳은살이 사라져서 연주 후에 손이 아픈 건 둘째로 치고 일단 손에서 쇳내가 심하게 났다. 

그간 기타 줄을 단 한 번도 교체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여전히 팽팽함을 유지하고는 있었다. 

기타 줄은 끊어지지 않아도 소모품이기에 정기적으로 새것으로 교체해주는 것이 좋은 걸 알면서도 그동안 무심해도 너무 무심했었다. 

새 줄로 교체하기로 결심하고 최고급 기타 줄을 샀다. 그런데 모두 교체하고 나서 조율하는데 그만 줄이 끊어졌다. 나노필름으로 코팅을 한 고급 기타 줄을 교체하자마자 실수로 끊어먹은 것이다.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한 내가 실망스러웠다. 

기타 줄은 헤드의 줄감개에 약간 여유를 갖고 감아야 하는데 이를 깜박했다. 

그러니 조율 도중 과도한 장력(張力)이 가해졌던 거다. 왜 그동안 나를 품에 안아주지 못했냐는 사랑스러운 기타의 투정이 곧바로 느껴졌다. 

기타 전문 연주자들은 기타 줄을 수시로 교체한다. 

기본에 익숙한 그들에겐 나 같은 실수가 거의 없다. 

프로든 아마추어든 정기적인 악기 관리가 필요하고 꾸준한 연습이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 없겠다. 

그것의 원천은 오직 애정 어린 관심이다. 


억지로 배운 피아노는 내 마음의 작은 꿈조차 이루어주지 못했지만, 기타는 그렇지 않았다. 

족히 십여 분이면 간단히 교체할 기타 줄이었건만 관심 두지 못해 기본을 망각해 버린 부끄러운 내 모습에 채찍을 가해본다. 

사랑스러운 대상을 다루고 대하는 기본은 끊임없는 관심뿐이다. 

그리고 무심함은 항상 이런 기본을 무너트리고 잊게 만든다. 


그것이 어디 악기뿐이겠는가? 

그동안의 무관심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오늘도 나의 기타를 소중하게 내 품에 안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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