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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Nov 06. 2021

저걸 봐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 스마트 소설 -

살 떨리도록 황당한 일은 어느 날 그녀가 한 통의 우편 고지서를 받고 나서 시작되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출근에 나서는 길이었다.

그녀가 집을 나와 전철역까지 걸어가는데 밤새 흐렸던 하늘은 비를 흩날리고 있었다.

주택가를 벗어나 전철역까지 아직 한참을 더 걸어야 했기에 비를 계속 맞을 수 없어 우산을 가지러 다시 집으로 뛰어갔다.


그녀가 비 맞기를 최소화하려고 손가방으로 머리를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달렸다.

그리고 자신의 다세대주택 현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려는 찰나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웬 남자가 튀어나오면서 서로 부딪혔다.


가냘픈 그녀가 뒤로 튕기듯 나가떨어지며 넘어졌다.

그녀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아픈 것은 둘째 치고 너무 수치스러웠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무릎 위 5㎝ 치마가 그만 미니스커트가 되어 그녀의 허벅지 안까지 그대로 노출을 시켜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스타킹을 신고 있어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그녀를 넘어뜨린 상대 남자는 우두커니 서 있으면서 마치 그 상황을 즐기려는 듯 여겨져 그녀는 매우 불쾌했다.

그녀는 그가 바로 몇 개월 전 윗집으로 새로 이사 온 여자의 중학생 아들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 녀석은 절대 중학생처럼 보이지 않을 만큼 덩치가 컸다.


그녀는 다시 일어나 얼른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엉치뼈에 통증이 심했고 발목에 생채기가 났지만 견딜 만했다.

그녀가 우산을 갖고 다시 급하게 집을 나섰다.

그런데 다시 1층 현관을 나서려는데 그녀가 처음 집을 나설 때 볼 수 없었던 우편물 한 통이 그녀의 우편함에 있는 게 보였다.

그사이 우체부가 다녀갔나 의심도 됐지만 이미 출근이 늦었기에 그녀가 우편물을 우체통에서 낚아챈 후 서둘러 나갔다.


그날 그녀가 직장에서 그 우편물을 보았을 때 여성가족부에서 보내온 우편물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성범죄자의 신상정보가 담긴 우편 고지서였다.

그녀는 그러한 것을 생전 처음 받아보았다.

멀쩡하게 생긴 젊은 남자의 전면 사진과 좌우 측면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냥 평범한 남자로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눈에 익었다.

주소를 보았다.

주민등록상 주소는 지방으로 되어있는데 실제 거주지가 꽤 익숙했다.


바로 다름 아닌 자신의 집 주소였다.


그제야 그가 누구인지 알 거 같았다.

층마다 두 세대가 마주 보고 있는데 그는 바로 앞집 남자였다.

우편물을 들고 있던 그녀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성범죄 요지는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에 2년 동안 19세 여자, 55세 여자, 23세 여자, 31세 여자, 47세 여자를 그야말로 나이대별로 5회 강간 및 2회 강간미수를 하여 ‘주거침입강간등’, ‘강간미수’죄로 징역 12년에 신상정보 공개 및 고지 명령 10년을 선고받았다.


전자장치를 착용했고, 특수강도강간 성폭력 전과도 있었다.

그나마 소아성애자는 아닌 것 같아 오히려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지 그녀는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자가 자신이 사는 바로 앞집에 살 수 있는지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사실을 직장 동료들에게 알렸고 무서운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였다.

그때 삼 남매를 키우는 그녀의 팀장이 그녀에게 언제 애가 있었냐고 황당한 말을 했다.


그 고지서는 오직 지역 내 아동 청소년 보호기관과 19세 미만 아동·청소년 보호 가구 세대주에게만 발송된다는 사실을 그녀가 모르고 있었다.

팀장은 얼른 성범죄자 신상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홈페이지에 접속해 그녀의 주소지를 검색했으나 정보가 전혀 뜨지 않았다.


팀장은 이상하니 여성가족부에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그녀가 불안하여 여성가족부에 연락해보았으나 그런 자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우편물을 사진 촬영하여 담당자에게 전송해 주었다.


그 이후 여성가족부에 의해 관할 경찰서에 정식 수사 의뢰가 들어갔고 경찰관들이 그녀와 그녀가 사는 앞집을 다녀갔다.

그리고 얼마 후 경찰 수사로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다.

그녀로서는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그녀로서는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앞집 남자는 평범한 학원 강사였고 윗집 중학생 녀석의 학원 선생이기도 했다.

어느 날 집 근처 후미진 곳에 숨어 담배 피우는 녀석을 앞집 남자가 발견하고는 호되게 야단을 쳤는데 그에 앙심을 품고 녀석이 가짜로 성범죄자 신상정보 고지서를 날조한 것이다.


그리고 비오 던 그 날 등교하던 중 그녀의 우편함에 그것을 넣었다는 것이다.

바로 앞집에 성범죄자가 사는 걸 알게 되면 그녀가 동네방네 소문을 퍼트리고 결국 그를 집에서 쫓아낼 수 있으리라는 그야말로 치기 어린 생각을 한 것이었다.


지금 남녀경찰관을 대동하고 3층 복도에 두 모자가 무릎을 꿇고 그녀와 앞집 남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중이다.


“얘가 덩치만 컸지 아직 중2입니다. 가정폭력으로 애 아빠랑 이혼하고 어렵게 혼자 자식 키우다 보니 애가 이 지경이 된 것 같습니다. 제가 다 잘못 키운 죄입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여자가 무릎 꿇은 채로 울먹이며 신세 한탄 반, 부탁 반이다.

그 옆에서 그 녀석도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닭똥 같은 눈물을 찔끔거리고 있다.

앞집 남자는 연신 ‘어휴, 어휴’ 하며 깊은 한숨만 쉰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계속 고민 중이다.

경찰 수사결과 발표되기까지 공포에 떨며 살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저걸 봐줘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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