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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Nov 05. 2021

어느 낮선 오전의 풍경

- 스마트 소설 -

이른 새벽이었다. 

남편이 일어났는지 변기 물 내리는 소리와 양치하는 소리 세면대 물 내리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남편이 양치를 하다말고 중간에 토악질하듯 ‘카악, 카악, 으웩’ 소리를 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남편 행동이다. 저 소리만 들으면 조금 남아 있던 일말의 정도 떨어질 판이다. 


적당히 하라니까 또 혓바닥까지 칫솔질하다가 그랬을 거다. 

남편은 회사 출근 차량을 이용하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섰다. 

그리고 아침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가볍게 할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일부러 챙겨 줄 필요도 없었을뿐더러 신혼 초부터 남편의 아침밥을 차려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남편 역시 특별히 요구하지 않았다. 


우린 서로 아침을 거르는 편이 많았고 먹더라도 견과류와 과일 정도였다. 

나는 부스스 일어나 딸아이 방으로 갔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끄려 했다. 

오늘은 내가 집에 있으니 딸아이를 직접 깨워줄 참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자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잘 자는 것 같은 아이가 자기 방을 나오더니 나를 보고 깜짝 놀란다. 

아마도 내가 집에 있으리라 생각을 못 했던 것 같다.


“더 자라고 엄마가 일부러 알람 껐는데. 엄마 오늘 휴가라 직접 깨워주려고 했지.”


알람이 안 울려서 아이가 놀란 모양이다. 

매일 자기 혼자 알람 소리에 일어나 우유에 콘플레이크를 말아먹고 학교에 간다. 

이제 겨우 3학년이다. 

남편 제안에 따라 홈 CCTV를 설치해서 회사에서 아이가 등교하기 전까지 모습을 관찰했다. 


아이가 밥 먹다 식탁에서 졸고 있는걸 CCTV로 보면서 깨워준 적도 있다. 

딸아이는 엄마가 집에 없는데 엄마 목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져 깜짝 놀라 일어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기에 내 사무실 책상에 앉아 동료들 눈치 안 보고 웃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엔 짠함이 더 크게 밀려왔었다. 


아이가 등교했다. 

이제 오롯이 나 혼자다. 

적막한 집안에 싸늘한 공기가 흘렀다. 


TV를 켰다. 

정말 오랜만에 아침 드라마를 본다. 

아침 드라마가 저녁 또는 주말드라마보다 스토리가 강렬하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김치 싸대기 명장면도 아침 드라마에서 탄생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몇 번 보다 채널을 돌렸다. 

원래부터 보던 드라마가 아니라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혀 재미가 없었다. 

잘 모르는 연예인과 일반인들이 나와서 아침부터 수다 떠는 토크쇼도 도무지 재미가 없다. 

뉴스 채널은 하나같이 보면 답답한 내용뿐이다. 

미담은 없고 죄다 사건 사고 아니면 남 비방하고 깍아 내리기 좋아하는 정치인들의 어제 일을 쏟아낼 뿐이다. 


TV를 껐다. 

또다시 적막이 집안을 감쌌다. 


도무지 이 낯선 집안 공기가 익숙해 지지가 않는다. 

딸아이를 낳기 전부터 줄곧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십 년도 훨씬 넘게 장기 근속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지금 시간이면 팀원들 간에 오전 회의가 바쁘게 있을 시간이었다. 

괜히 팀원들이 궁금해 졌다. 

그리고 이내 이런 내 모습이 싫어졌다. 

놔야 할 끈인데 아직 까지는 놓고 싶지 않은 건지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신선한 바깥 공기가 맡고 싶어져 뒤 베란다로 나간다. 

우리 집은 공동주택 1층 정남향이다. 

거실 베란다로 내다봐야 단지 내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바로 앞에 주차된 차를 보는 것뿐이다. 

하지만 뒤 베란다는 다르다. 

수목이 울창하다. 

바람도 잘 분다. 

그런데 거실 베란다보다 답답하다. 

뒤 베란다 창은 온통 방범 창살이 덧대어 있기 때문이다. 


창살을 부여잡고 신선한 공기를 마셔본다. 

그런데 왠지 감옥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창살 잡은 손을 바로 뗐다. 


얼마 전에 남편에게 회사 그만두고 글이나 한번 써볼까 하고 넌지시 말한 적 있다. 

남편은 월급쟁이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냐 물어봤다. 

나는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답해주었다. 


“당신 조앤 롤링 알지? 헤리포터 작가. 그녀가 받은 저작권료가 얼만지 알아?” 


남편은 모른다 했고 나는 일조가 넘는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남편은 당장 회사 때려치우라 했다.


“와우, 그 정도일 줄이야. 세상에 개인 한 사람이 뭔 일을 해야 일조 넘게 번다냐? 작가가 대단한 거구나!” 


그렇게 과하게 놀란 남편은 금방 시무룩해져서 ‘그렇지만 당신은 조앤 롤링이 아니잖아!’ 라고 했다. 


그렇다. 

그래서 고민이다. 


누구나 다 글을 쓴다고 그녀처럼 될 수는 없다. 그것이 또한 현실이다. 

하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글 쓰며 꿈이라도 꿀 수 있으니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얼마 전부터 회사 내에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회사가 조만간 매각된다는 거였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는가? 


드디어 언론에 기사화됐다. 

전혀 작지 않은 제약회사였기에 뉴스거리가 분명했다. 

회사도 인정했다. 

직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개중엔 퇴직금을 미리 중간정산해야 한다는 말들도 나왔다. 


내가 전업 작가 하겠다고 남편에게 얘기한 때도 바로 그 시점이었다. 

왠지 회사에 더 버틸 자신이 없어졌다. 

출산 휴가, 육아휴직 이후에도 당당히 살아남았었다. 

하지만 매각으로 인한 구조조정 여파가 불어닥치면 이제는 더이상 버틸 자신이 없다. 


나는 회사가 나가라고 하기 전에 나올 생각이다. 괜히 버티면서 초라해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뿐이다. 

다시 감옥과 같은 집안의 창살을 잡고 바깥의 공기를 들여 마셔본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새들이 여기저기에서 지저귄다. 

그 소리에 놀라 푸르름을 조금씩 벗어던지는 녹음(綠陰) 속 고요한 아침이 가져다주는 풍경이 익숙해 져야 할 텐데 아직은 나에게는 아주, 또 아주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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