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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Nov 04. 2021

이유있는 갑질

- 스마트 소설 -

건축허가과정은 예상외로 순조롭지 못했다. 

준공되고 나서 사용승인 후 발주처는 곧바로 건물의 상당수를 철거하고 그들의 입맛대로 바꾸려 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이미 설계도면에 그들이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여러 눈속임 장치를 모두 해두었다. 

그렇지만 인허가권자인 공무원들이 그리 핫바지가 아니었다. 


“이걸 우리가 어떻게 믿어요! 분명히 준공 이후에 이거 전부 털어낼 거잖아요! 딱 봐도 그래 보이네.”


박 소장이 그렇지 않다고 거듭 말했지만, 인허가사항 담당 실무자는 요지부동이다. 

그러면서 국토부 질의응답을 받아보라 하였다. 

박 소장은 국토부로부터 기껏 답변을 받아봤자 관료주의적 답변을 받을 게 뻔하다고 단정했다. 


두루뭉술한 답변을 주고선 인허가권자에게 물어보라고 다시 공을 넘길 게 뻔하였다. 

핑퐁식으로 시간만 소비하려는 담당 실무자의 계략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허가 내주는 것에 시간을 끄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터였다. 


발주처 임원은 하루가 멀다고 박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와 허가받아냈는지를 물어왔다. 

빨리 사업이 시작 안 되면 자기는 옷을 벗고 나가야만 한다며 난리였다. 


박 소장이 다시 담당 실무자를 만나러 갔을 때 그녀는 뒤에 멀찍이 떨어져 앉아있는 자신의 상관인 과장을 힐끗 보고는 박 소장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허가는 어떻게든 나긴 나겠죠. 이 건은 과장님 결단만 남았는데 지금 심기가 매우 불편하세요.” 


그녀는 그러면서 혹시 청와대에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압력을 행사한 적 있냐고 나지막이 물어왔다. 

그때 박 소장의 기억에 발주처 임원이 언젠가 한 말이 떠올랐다. 


“내가 개인적으로 청와대에 끈이 좀 있거든. 우리 박 소장님 내가 좀 도와줄까?”


박 소장은 화들짝 놀랐다. 

절대 인허가 담당자에게 어떤 경우라도 압력을 행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길어도 한 달이면 끝날 허가업무가 석 달째 접어들어 가고 있으니 그 임원이 초조함을 견디지 못한 것 같다. 


결국, 그가 청와대에 민원을 넣었다. 

그리고 청와대에 있는 그의 지인이 담당 인허가권자인 해당 과장에게 왜 민원불편을 초래하냐고 한소리 한 모양이다. 

박 소장은 지금이 무슨 호랑이 담배 피우던 자유당 정권 시절도 아닌 세상에 압력으로 일을 처리하려 하여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어 놓냐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박 소장이 인허가를 담당하는 과장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했다. 

박 소장의 사과는 단 한 번으로 끝이 나지 않았다. 

아예 그 과장이 퇴근하기 전까지 그 주변에 머물러 있다가 화장실 갈 때나 또 담배 피우러 나올 때마다 그를 쫓아가 허리를 굽혔다. 


박 소장의 선배 가운데 누구는 건축 인허가권자들이 그 맛에 건축공무원 한다고 비꼬기도 했다. 

건축을 공부했지만, 수리적 계산 능력도 부족해, 디자인 능력도 부족해, 그러다 보니 엔지니어도 건축가도 못돼고 결국 할 줄 아는 건 건축공무원이라는 거다. 

그리고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상심리에 이끌려 간단한 허가를 질질 끌며 애태우는 게 습관적이라 했다. 

일반화시키기엔 무리였지만 박 소장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정도로 맞는 말이라 맞장구를 쳤었다. 


결국, 박 소장의 노력은 과장을 감동하게 했는지 그가 퇴근하는 길에 박 소장에게 다음날 오전 자신이 출근하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고 하였다. 

그다음 날 아침 박 소장은 또다시 발주처 임원의 섣부른 판단에 대한 책임을 다시 한번 사과했으나 그는 매우 의외의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청와대가 문제가 아니야. 그리고 또 그걸 왜 그쪽에서 사과해요? 물론 그렇게 압력이 들어온 것 자체도 기분이 나빴던 건 사실이지만, 허가 내주는 일을 이렇게 내가 석 달 가까이 질질 끌어온 건 당신네한테 더 문제가 있었어요. 전에 최초 나를 처음 만나 허가에 대한 질의 사항 주고받고 했을 때, 그때 말이야 내가 말하고 있는 도중에 당신네 가운데 누가 아주 기분 나쁘게 이를 드러내며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단 말이지!” 


그랬었다. 


그가 간단한 허가를 질질 끌어온 이유는 공무원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이빨 보이며 웃어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바로 그 간단한 이유 때문이었다. 


박 소장은 그날 두 명의 부하직원을 대동하고 왔는데 그들에게 물어보니 아무도 그날 비웃는듯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날 이후 박 소장은 직원들을 상대로 틈만 나면 정신교육을 한다.


“공무원들은 말이야 두 종류가 있어. 우리가 민원을 넣고 갑질을 할 수 있는 공무원과 그렇지 못한 공무원이 있지. 우린 후자를 상대해. 그들이 허락해 줘야 우리가 산다. 이유 있는 갑질을 유일무이하게 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들을 만나게 되면 절대 이빨을 보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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