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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Nov 04. 2021

너희가 싫어할 말을 알고 있지롱~

- 스마트 소설 -

발주처 실무자와의 껄끄러운 첫 대립은 박 소장이 보낸 이메일 한 통이 화근이었다.


발주처가 자신과 상의 한번 없이 일방적으로 기한을 정해 요청한 보고서를 박 소장이 전자메일에 파일을 첨부하여 보냈는데 그 메일을 받아본 발주처의 김 과장이 씩씩거리며 박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박 소장님! 보내주신 메일 잘 받았고요, 보고서 파일도 잘 받았습니다. 보고서는 아직 저희가 검토 중인데, 그보다 다른 문제로 전화를 드렸어요.”


발주처 실무자들은 막내 사원을 제외하고는 전부 여직원들이었다.

발주처 실무자들은 경력도 박 소장보다 훨씬 적었는데 가장 경력이 많은 최고 선임자인 윤 팀장은 박 소장의 대학 1년 여자 후배이기도 했다.

후배를 갑으로 모셔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날 전화 한 김 과장은 윤 팀장의 바로 아래 직원이었다.


“박 소장님! 근무 년 차가 어떻게 되세요?”


박 소장은 도발적으로 질문하는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질문을 던져놓고도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겠다는 듯 김 과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들려왔다.


“이메일을 어떻게 그렇게 보낼 수 있으신가요? 사회생활 꽤 오래 하신 분이라고 안 느껴질 정도예요!”


박 소장이 얼마 전부터 벼르고 있었는데 먹잇감을 던지니 발주처 직원이 덥석 물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짐짓 모른 체했다.


“다음과 같이 귀사가 요청하신 사항을 기한 내 통보해드립니다. 가 뭡니까! 통보라니요!”


그녀가 말을 이어가려는데 박 소장이 그녀의 말을 끊고 통지하여 보고한다는 행정용어 통보를 통보라 하지 그럼 뭐라고 하냐면서 지금 갑질하는 거냐고 되받아쳤다.


“박 소장님! 이건 저희가 갑질을 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보고서 첨부하여 보내드린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통보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는 게 저희로서 기분이 언짢은 거예요. 용역사 측에서 발주처 상대로 흔히 쓰는 용어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일부러 갑질하려는 게 아니에요. 제말은 말을 좀 가려서 해주십사 하.”


“통보라는 용어가 갑의 전매특허 용어입니까? 상위기관이 하위기관에 하달할 때 쓰는 용어라고 도대체 어느누가 그래요?”


박 소장이 김 과장의 말을 끊고 재차 반격하자 그녀가 머뭇거렸다.


“그, 그런 게 아니라요. 사회 통념상, 흔히 쓰는 말이 아니라. 제말은.”


“아, 글쎄. 통보라는 용어를 기관의 급에 따라 쓴다고 그동안 생각했던 김 과장님과 발주처 생각이 잘못된 거지요! 안그래요?”


그녀는 거듭되는 박 장의 몰아붙임에도 기죽지 않고 그래도 통념이란 게 있으니 서로 사용을 자제하자고 말을 하고 간신히 통화를 종료했다.

박 소장은 자신이 만든 상황임에도 상당히 불편했다.


“별, 거지 같은! 같잖아서 원!”


그가 거친 말과 함께 수화기를 ‘탁’ 하고 신경질적으로 내리자 주변의 직원들이 웃으면서


“소장님 이제 시작이에요. 뭘 벌써 그렇게 화를 내시고 그러세요.”


라고 했다.


소장으로 경력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그와 달리 기존 직원들은 발주처 직원들의 언행에 이미 넌더리를 여러 번 앓고 있었고 모든 직원이 발주처 직원들과 다 한 번씩은 격한 충돌을 경험한 전력들이 있었다.

하지만 을로서 갑에게 대항하기 어려웠다.


직원들은 발주처의 여자 팀장이 박 소장의 직속 후배이다 보니 선배에게 이래라저래라 못하고 오히려 눈치가 보이는지 자신들에게 이것저것 요청하는 일이 그나마 전보다는 많이 줄어들었다며 박 소장에게 고마워했다.


용역사의 밥줄을 자기네들이 쥐고 있다고 생각하니 자기들 편의 위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 윤 팀장의 지시나 묵인이 없이 그 아래 직원들이 결코 그렇게 행동할 수 없을 일이었다.

학창시절 말수가 적고 얌전했던 그녀로 기억하고 있는 박 소장은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박 소장이 급한 문제로 발주처 김 과장과 통화를 하려 했는데 젊은 여자 대리가 전화를 대신 받았다. 그는 이때다 싶었다.


“박 소장이에요. 지금 좀 급한데 자리에 김 과장 안 계세요?”


“뭐라고요?

김 과장?

어디다 대고 김과장이래요. 우리 과장님께.

박 소장님이 김 과장님 상관이에요!”


박 소장은 그래 너 잘 걸려들었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당신들한테나 님이지 나한테도 님이야? 니미다 이런 제길!”


“어머! 어머! 어머! 소, 소장님 그, 그렇게 안 봤는데.”


흥분한 그녀가 말을 더듬으며 이어가려 했지만, 박 소장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박 소장은 그의 후배 윤 팀장이 먼저 자신에게 전화하기를 기다렸다.

뭐, 안 해도 그는 아쉬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칼자루 쥐고 흔드는 자들에게 겁먹다 보면 무식하게 휘두르는 칼에 찔리기 쉽다고 그는 생각 했다.

그래서 어차피 이래저래 맞을 칼이면 나도 한번 휘둘러 보자는 묘한 도전 의식이 박 소장의 피를 끓게 했다.


그가 콧노래 부르듯 흥얼거렸다.


“나는 너희가 싫어할 말을 알고 있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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