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회사 복지 프로그램으로
부부 상담을 시작했다.
총 10회기.
그러나 매 회기 상담을 마친 후엔
늘 답답함이 남았다.
상담이 거듭될수록
변화의 실마리를 찾기보다는,
오히려 더 단념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실수와 부족함을 돌아보며,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남편은 끝내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고,
상담 내내 나의 감정 기복과 미성숙함만을 문제 삼았다.
남편은 그 상담의 시간마저도
나의 문제점을 지적해 내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이용할 뿐이었다.
매 회기 50여분의 시간은 빨리도 지나갔다.
내가 남편의 가면을 벗겨내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애써 틈을 만들고, 그 단단한 가죽을 조금이라도 들춰보려 하면
상담 시간은 종료되었고,
일주일 뒤 다음 회기를 시작할 때면
다시 남편은 단단한 갑옷을 입고 앉아
지난주에 했던 이야기를
처음부터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었다.
상담이란 건,
결국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준비가 된 사람’에게나 의미가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도,
문제의식도 없는 사람이 상담을 받는다는 건,
그냥 상대방을
더 지치게 만드는 일일 뿐이었다.
그 상담실에서 나는,
변화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단념을 확인하는 시간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상담이 끝날 무렵,
우리에게 내려진 처방은 ‘대화 방식의 전환’이었다.
그 방법은 "I-message"로 감정을 전달하라는 것이었다.
특히 갈등 상황에서
남편이 내게 퍼붓는 인격 모욕과
내 가족에 대한 비난은 참기 어려웠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말해보았다.
“당신이 그렇게 말할 때,
나는 마음이 아프고 힘들어.
그럴 땐 대화를 이어가기가 너무 어려워.
앞으로는
서로 상처 주지 않는 말로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럴수록
남편은 오히려 갈등 상황에서
더 자주, 더 노골적으로 그런 말을 쏟아냈다.
마치 내 급소를 알고 거기만 찌르듯,
인격 모욕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이상했다.
내가 노력할수록, 남편은 점점 더 당당해졌고,
그 모습은 내 안의 마지막 기대마저 꺼뜨렸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그는 늘 성실하게 일하고,
자신의 일상은 흐트러짐 없이 살아냈다.
나는 이렇게도 힘든데,
그는 늘 지독하게 성실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살아가는 그의 평온함이,
나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보통의 관계에서 성실함은 미덕이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기 위한 방패가 될 때,
그건 미덕이 아니라
방어이고, 외면이며, 결국엔 잔인함으로 다가온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이 결혼을 유지할 것인지,
끝낼 것인지는
전적으로 나의 결정이라는 것.
내가 감정적 소통의 부재를 감내하고
그의 모든 반응을
무시가 되었던, 외면이 되었든
내 안에서 삼켜낼 수 있다면
이 관계는 지속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버텨낼 수 없는 구조라는 것.
이혼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내게,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폭력, 외도, 도박. 그게 3대 이혼 사유야.
그 외의 이유로 이혼하면 나중에 다 후회해.
남편은 그 어떤 항목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닌지,
정말 내가 예민하거나 부족한 사람은 아닌지
참 많이도 자책했고,
나 자신을 검열했다.
아마 당시의 그도 어찌할 바를 몰랐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식,
지독한 성실함으로
자신을 더욱 감쌌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참후에야 깨달았다.
그는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깊고 오래 남는 상처를
말과 침묵으로, 꾸준히 내게 남기고 있었다.
그건, 정서적 폭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