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이 글러먹었다.
사고방식과 문화의 차이로 갈등이 생길 때마다
그의 결론은 늘 같았다.
문제는 내 인성이라는 것이다.
나는 대화를 시도했고, 상황과 감정을 설명하려 애썼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침묵, 회피, 그리고 냉담함.
참다못해 목소리가 커지면,
그제야 그는 입을 열었다.
“인성이 글러먹었네. 너 같은 인간하고는 더 이야기할 가치가 없어.”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는 미성숙한 사람이라며,
나를 한심하다 비난했다.
그때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저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갈 수는 없었다.
감정의 교류는 물론이고,
의사소통조차 되지 않는 남편과의 갈등은 거의 매일 반복되었다.
어떻게 해야
그가 나를 탓하지 않을까.
어떻게 말해야, 비난받지 않을까.
단어를 고르고, 말투를 낮추고, 말을 아끼며
하나하나 조심스레 건넸지만,
그 모든 노력은 공허하게 흩어졌다.
나는 애쓰고 있었고, 그는 무반응이었으며
그 온도 차 속에서 나의 분노는, 노력의 양에 비례해 커져갔다.
감정이 극에 달하면
목소리가 높아졌고,
때로는 내가 후회할 만한 말과 행동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면 그는 그 장면만을 콕 집어내
“봐, 너는 인간으로서 기본이 안 돼 있어. 인간쓰레기야.”
그렇게 나를 차분한 목소리로 단정지었다.
어느 한밤중에는 내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따님을 잘못 키우셨네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관계가 괜찮을 때,
나는 내 실수나 직장에서 겪은 어려움들을 스스럼없이 꺼내놓곤 했었다.
가까워지고 싶어서, 이해받고 싶어서—
남편이니까, 가족이니까, 괜찮을 줄 알고...
그런데 갈등이 시작되면,
남편은 꼭 그 이야기들을 꺼내 들었다.
그건 위로받기 위해 꺼낸 이야기였는데,
남편에게 들어가면 언제나 나를 찌르는 칼이 되었다.
“넌 그런 실수나 반복하는 무능력자야.
직장인으로도, 사회인으로도 기본이 안 된 한심한 인간이지.”
그럴 때마다 나는 다짐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내 실수를 알아도,
남편, 너에게만은 알리지 않을 거야.
내 어떤 약점도 보이지 않을 거야.
신혼 초 가족 모임 자리에서, 친정 언니들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 막내, 할 줄 아는 거 아무것도 없어요.
공부만 하다가 결혼해서 청소, 빨래, 요리 다 못해요. 제부가 잘 봐줘야 해요~”
엄마도 거들었다.
“자네가 잘 봐주게. 내가 아무것도 안 가르쳤어. 자네가 좀 봐주게~”
그건 그냥, 흔한 농담이고, 인사치레였다.
그런데 부부 갈등이 생길 때마다,
남편은 그 장면들까지 끄집어냈다.
“너네 친정 식구들도 너를 싫어하더라.
내 앞에서 네 험담을 그렇게 하는 걸 보면,
너희 가족도 네가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지 잘 아는 거 아냐?”
그 시절,
참 많이 울었다.
가슴이 막히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우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는 나를 향해서도 그는 말했다.
“또 울어 대는군.”
그래서 나는,
지하주차장 차 안에서
그렇게도 서럽게 우는 날이 많았다.
그곳이 그 시절의 나에게
유일한 피난처였다.
그때 나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감정이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컸고,
그래서 많이 부서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