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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귀새끼 Jan 27. 2016

눈의 선물

하얗고 조용해서

  눈이 온다. 


  조용하다. 눈이 소리를 흡수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렇게 세상의 소리를 모두 머금어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그런 눈의 마음을 아는지 사람들은 고요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지고, 차의 속도를 줄이고, 묵묵히 땅을 바라보며 행인의 발걸음을 지킨다. 아이들의 웃음만큼은 시끄럽게 내버려둔다. 아이들만이 정적을 깨뜨리도록  허락받았다. 아이들의 웃음은 깨끗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용해졌으니 그대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창 밖을 바라보고 ‘눈이 와!’ 라며 추억을 끄집어낼지 모른다. ‘커피 한잔  할래?’라는 말도 평소보다 들떠 있다. 나가기 귀찮아하는 걸 보니 눈의 탓으로 돌리려나 보다. 너무 많이 올까 걱정하는 한숨도 들린다. 늘 혼자였던 고민도 한숨만큼 같이 하는 순간이다. 언제나 더 많았던 내 얘기는 눈 속에 묻어두자. 못 들었던 아니 안 들었던 그대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한다. 더 사랑할 수 있다. 눈이 주는 선물이다. 


  고요함은 원래 나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이제 나와 이야기할 차례이다. 오늘 나의 게으름도 눈 때문이다. 괜찮다. 나를 용서한다. 수많은 나의 잘못을 담을 만큼 눈은 많이 온다. 계속 들어보니 투정이 심해진다. 예전 같으면 일일이 다 들어줄 수 없다고 다그쳤을 것이다. 책임져야 할 것들 것 많아. 꿈인지 욕심인지 뭐가 그렇게 중요해, 일단 쫓아가는 것이 우선이야. 우리 나중에 얘기하자. 미안 내가 그랬었지. 좀 더 너그러워져도 되었을 텐데, 오늘에서야 내 얘기를 귀기울이네. 눈이 온 덕분이야. 투정 부리는 나도, 다그쳤던 나도 모두 용서하자. 눈이 주는 선물이다. 


  눈이 반갑지만은 않은 공사장의 인부들, 퀵서비스 기사들, 음식점 배달원들, 농성장의 이웃들  모두 잠시 멈추어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잠깐이라도 눈이 주는 조용한 선물을 누렸으면 좋겠다. 우리의 삶은 이미 작은 평화도 거스를 만큼 팍팍하고 힘들어져 버렸다. 모두가 나를 용서하고 그대를 사랑했면 좋겠다. 눈이 주는 기회라 생각하고. 그러면 눈이 조금은 반가워지겠지.


  눈이 하얀색이라 다행이다. 눈이 하얗지 않았으면 적막했을 것이다. 하얀 고요가 사랑도 하고 용서도 한다. 그대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이고 나와 대화하며, 그들도 떠올릴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눈이 까맣다면 매일 밤의 적막처럼 외롭고 쓸쓸했을 터이다. 사람들은 고독이 싫어서 밤의 적막조차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러 가지 시끄러운 소리로 귀를 닫는다. 까맣게 조용하면 또 사람들이 귀를 막을까 봐 눈은 하얀 것일지도 모른다. 

  하얀 눈이 질척하고 시커멓게 변하기 전에 가장 좋은 추억을 꺼내자. 깨끗한 웃음으로 가득 찼던 모습으로 다시 채우는 거야. 깨끗한 웃음은 정적을 깨뜨려도 된다고. 

  마음껏 누려도 되는 눈이 주는 선물이야.

 

  눈이 온다.



Image 참고 :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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