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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귀새끼 Jan 28. 2016

설거지 잡상

이것도 고독한 순간임을 깨닫는다

  설거지를 하자. 


  배가 불러 소화도 시킬 겸이라고 얘기해보지만, 사실 싱크대 앞에 서는 마음이 신나지는 않다. 쌓인 빨래를 해치울 때의 뿌듯함에 비하면 유난히 귀찮다. 오죽하면 벌려진 사고 뒷수습을 할 때도 설거지한다고 표현할까. 그런데도 세탁기만큼 식기세척기가 보편화되지 않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아니 그것이 보편화되지 않아서 빨래보다 설거지가 귀찮은 것인가? 쓸데없는 생각이 이어지는 것을 보니 역시 귀찮다. 

  매번 싱크대 앞에 설 때마다 느끼지만, 먹을 때에 보이지 않은 설거지거리는 왜 이리도 많은지. 음식을 준비할  때 필요한 식기들까지 염두에 두지 않은 내 판단 오류다. 설거지 한번 하는 걸 가지고 유난을 떤다고 핀잔을 들을 만 하다. 또 하나 늘 아쉬운 것은 싱크대의 크기다. 좀 더 컸으면. TV에서 종종 보는 예쁘고 좋은 조리기구를 가지고 있으면 요리도 훨씬 더 맛있게 할 수 있으리란 환상과 맞먹는다. 큰집에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벌지 않는 나의 원죄는 애써 무시한다. 아직도 설거지를 시작하지 않고 있다. 


  장모님이 손뜨개로 짜 주신 수세미가 좋다. 세제를 몇 번 짜내고 그릇들을 하나씩 들어 골고루 닦는다. 퐁퐁이란 말은 참 잘 만든 이름이다. 짤 때도 퐁퐁, 거품도 퐁퐁. 역시 거품이 많이 생겨야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예전에 어느 유명 연예인이 세제를 쓰지 않고도 깨끗하게 설거지하는 방법을 자랑스럽게 얘기한 적 있었다. 뜨거운 물만 사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실험해 보지 않았지만, 늘 뜨거운 물을 콸콸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나 가능하겠구나 싶어 피식 웃었다. 언젠가 보일러 연료비를 아끼기 위해, 찬물에도 잘 씻기는 주방세제가 있는지 물었던 후배의 진문이 대비되는 순간이다. 환경을 아끼는 것도 부자들이나 가능한 것일까. 세제로 인한 수질오염을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가 더 많이 사용된다는 것은 또 어떤 모순인가.

 

  그릇을 닦을 때에는 음식물이 닿지 않은 뒷면이나 수저 손잡이도 세제를 골고루 묻혀주어야 한다. 쌓인 그릇들끼리 묻어난 음식물 찌꺼기와 기름기도 놓쳐서는 안 된다. 어릴 적에 어쩌다가 설거지 한번 하면, 일만 더 만든다고 등짝을 맞던 경험에서 얻은 지혜이다. 대단치 않은 것이지만 꼼꼼한 설거지 능력의 판가름이 나는 순간이다. 아 한 가지 더, 마지막에 수챗구멍에 쌓인 음식물 찌꺼기 처리를 빼먹지 말아야지. 오늘은 그래도 좀 적네.

  깨끗하게 그릇을 비우지 않고 밥알을 남긴 채 놓인 그릇은 아이들 것이다. 식사시간에 체크한다는 것을 깜박했다. 설거지 끝나고 잔소리해야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농민들의 피와 땀방울이라고 가르쳐주셨다. 밥알이 피와 땀방울처럼 생겨서였을까? 덕분에 밥은 남겨도 밥알은 남기지 않는다. 밥도 남기지 않게 하려면 농민들의 뭐라고 비유해주어야 할까. 또 고민이다. 숙제는 다음에.


  깨끗한 물에 다시 헹군 그릇을 차곡차곡  올려놓는다. 물을 많이 쓰는 편이다. 고무장갑을 쓰지 않는다. 고무장갑을 쓰면 깨끗하게 헹구었는지 자꾸 의심한다. 뽀드득 손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부습진 생긴다고 색시가 말리지만, 잘 생기지 않는다. 얼마 하지 않은 주방일 가지고 생색내지 말라는 뜻인가 보다. 그래도 혹시 생길지 모르니 계속 고무장갑은 쓰지 않으련다.


  요리와 일기는 개인의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마지막 창조활동이라고 늘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난 창조활동 한 가지는 너무 못한다. 설거지가 끝났다. 몇 시간 후 있을 다음 창조활동을 위해 무언가 보탬이 되었다는 대단한 의미를 부여해본다. 

  다음에 싱크대 앞에 설 때는 또 귀찮아지겠지.




이미지 참고 http://morguefi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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