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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귀새끼 Mar 28. 2016

쪼그려 앉기

너와 눈높이를 맞출게. 네가 바라보는 것을 볼게.

뭐라고? 미안 다시 말해봐.

  오늘은 지유의 건강검진을 위해서 평소에 가던 길과 다른 방향으로 어린이집을 등교하는 날입니다. 소아과와 치과 의원을 들러야 하거든요. 왕복 8차선에 지나가는 차도 많은 삼거리 횡단보도를 오늘은 건너야 합니다. 신호등 빨간불. 병원에 간다고 하니까 살짝 들뜬 지유가 신호를 기다리는 잠시도 견디지 못하고 재잘거립니다. 손 잡은 쪽으로 내려다보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정확히 못 들었습니다. 쪼그려 앉아 귀를 기울입니다. 병원에 가면 키 재냐고 어젯밤에도 물었던 그 얘기입니다. 


  지유의 말을 듣기 위해 귀를 대는 동안, 저의 시선은 넓은 차도를 향했습니다. 바로 지유가 평소에 바라보던 그 도로의 모습입니다. 쪼그려 앉아 있으면 지유와 눈높이가 꼭 맞춰지기 때문입니다. 

흔하디 흔한 준중형 승용차가 저렇게 큰 줄 몰랐습니다. 내 키만 한 바퀴를 가진 1톤 트럭이 지나갑니다. 손님을 태우기 위해 천천히 속도를 줄이는 택시도 엄청 빠르게 다가옵니다. 멀리서 들어오는 SUV는 타고 있을 때만 가족을 위한 차량이겠구나 싶습니다. 타요의 친구 로기 버스가 반갑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지유야 차들 이렇게 보면 안 무서워?”

  “응? 아니. 그냥 시끄러워”


  지유가 웃으면서 귀를 막습니다. 이게 안 무섭다고? 아직 시각보다는 청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서 그런지 골목에서 곁을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멀리서 달려오는 차보다 더 무서워하긴 합니다. 그렇다고 안심하기에는 제가 본 풍경은 너무 무서운 세상이었습니다. 이 녀석, 늘 이 모습을 볼 것 아니야.

 

  저보다 20센티미터 가까이 큰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키가 큰 그 친구를 부러워하면서 그 높이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어떨까 늘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키를 낮추어 확인할 수 있었던 70센티미터 낮은 세상, 내 아이가 늘 바라보는 시선의 세계를 궁금해한 적은 없었습니다. 


  많이 말하는 아이와 시선을 맞추라는 얘기는 그냥 집에서 같이 뒹굴거리며 대화하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어른과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아이에게 시선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어릴 적 그렇게 넓었던 옛날 집 골목길이 30년이 지난 지금 왜 이리 좁아 보이는지도 이제야 이해합니다. 

  

  자꾸 안아달라는 말에도 꾀부린다고 거부했었는데, 어쩌면 걸어갈 때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아빠 손만으로는 이 위험한 세상이 두려웠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종종 쪼그려 앉아봐야겠어요. 




안아 올려서 네 눈높이를 나에게 맞추기엔 너무 힘들다.




이미지 참조 : https://pixabay.com/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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