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아이인데
제목만 봐도 감동이 오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일본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2013년에 개봉한 영화인데, 이제야 봤습니다. 제목에 끌리기는 했지만, 그만큼 내용이 어느 정도 뻔하게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실제 영화를 보았을 때도 예상대로 전개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개봉했던 일본 영화들 특유의 잔잔함과 함께, 다소 빠른 전개와 많지 않은 대사로 주제의식을 잘 표현했습니다. 주인공은 능력 있지만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혹은 보내지 않는) 젊은 아빠입니다. 그가 자신의 혈육이 아님을 알게 된 자녀를 사랑하고 다가가는 법을 배우며 성장한다는 내용입니다.
요즘은 제 또래들이 많이 요구받는 것 중에 하나가 자녀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아빠입니다. 양육에 있어 아버지의 역할이 자녀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부터, 힘든 육아활동을 부부가 공평하게 나눠 감당해야 한다는 것까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 아버지 세대들처럼 열심히 일만 하면 되었던 시대에 비해 삶에 여유가 특별히 더 많아진 것도 아니고, 꿈꾸는 아버지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한 현실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만큼 좋은 아빠의 역할을 위해 무척이나 힘든 상황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요즘 저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본의 아니게(?) 많습니다. 예전에 비해서는 같이 노는 시간을 조금 더 오래 견디어내지만, 아이가 엄마를 찾기 전에 제가 먼저 색시를 찾을 때가 부지기수입니다. 막상 저의 시간을 이미 거친 선배들은 사춘기 아이들이 훨씬 바쁘고 부모와 함께 하기를 꺼린다는 소리를 들으면, 지금 이렇게 열심히 해서 뭐하나 싶기도 합니다. 아이는 점점 자라는데 저는 점점 어려지는 모양입니다.
아직도 정기검진 문진표를 쓸 경우 고개를 한참 갸우뚱거려야 하고, 애가 아파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평소 생활 습관을 물어보면 ‘아이 엄마가 더 잘 아는데…’라며 머쓱해하기 일쑤입니다. 매일 어린이집과 학교에 보낼 때 입힐 옷은 여전히 색시가 꺼내어 준대로만 입혀야 하고, 포니테일 머리 하나 묶어주는 것도 한참 걸립니다. 조그만 엉덩이들 때문에 큰 아이와 작은 아이 속옷은 아직도 헷갈리고, 함께 걸어가면서 보폭을 못 맞추어 어느 새 한참이나 앞서 걷는 저를 발견합니다.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아이인데, 아빠는 언제 제대로 된 아빠로 성장하는 것일까요? 첫 아이를 3년 동안 키웠으면 둘째 아이 때에는 좀 나은 아빠로 성장해서 배테랑이 되어 있으면 좋겠는데, 왜 아이 하나 아빠에서 아이 둘 아빠로 다시 처음부터 시작인 것일까요? 도대체 아빠는 언제 완성되는 것일까요?
며칠 전에 친구 녀석의 첫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 친구도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페이스북 계정에 아이 사진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아빠학교 입학”이라고 썼네요. 아빠학교. 참 겸손하고 예쁜 말입니다. 저는 이제 아빠학교 8학년. 아직 멀었습니다. 언제 끝날는지 또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이렇게 아빠가 되어갑니다.
신기하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