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할 때, 나도 보고 싶다.
나도 산에 갈래!
교회 행사인 산행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휴일에는 색시의 짐을 좀 덜어주려는 마음에 한 명은 데리고 나가야겠다 싶었지요. 문제는 누구를 데리고 나가느냐였습니다. 아빠 따라 산에 가겠노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는 둘째는 평소에 아파트 엘리베이터만 나서면 바로 안아달라고 조르기 일쑤고, 큰 아이도 둘째에게 자리를 빼앗겼을 뿐 원래 오래 걷다가도 늘 피곤해하며 아빠가 안아주길 바라는 친구입니다. 이런 아이들과 함께 산행이라니요.
예상했던 대로 많은 어른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다섯 살짜리 꼬마가 작은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걷는 모습이 귀여워 연신 감탄과 칭찬이 흘러나옵니다. 둘째도 그런 응원에 조금 고무된 듯 평소와 달리 힘들다는 소리도 안 하고 열심히 걸어 올라갔습니다. 조금 올라가니 덥다고 목도리를 풀어헤칩니다. 그만큼 날씨가 포근했지만, 걱정되는 것은 며칠 전 내린 눈 때문에 산에 쌓인 눈과 진창으로 미끄러워진 산길이었습니다.
새로 신은 하얀 운동화를 걱정하는 아빠에게 '나중에 아빠가 빨면 된다'며 호기롭게 대꾸하는 모습도 당찹니다. 바로 그걸 걱정하는 거라고.
생각보다 곧잘 올라갔습니다. 아무래도 어른들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해 금세 우리 둘만 남았습니다. 둘만 남으니 아까보다 조금 기운이 빠진 듯합니다. 결국 아빠에게 안아달라고 하네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여기까지 혼자 열심히 걸어 올라온 것도 대견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저는 힘을 내어 지유를 업고 쉬엄쉬엄 산을 올랐습니다.
사고가 터졌습니다.
본대보다 한참 떨어져서 걷느라 지친 아이와 업고 오르느라 힘든 저는 중간에서 다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업고 내려오다가 그만 미끄러져 뒤로 넘어졌습니다. 산은 역시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한 법, 게다가 눈길 산행이었으니 최대한 조심했지만, 역시 아이를 업고 산을 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심하게 구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아빠 등에 업혀 재잘재잘 떠들다가 넘어져서 아랫입술이 찢어져 피가 흘렀습니다.
아이는 당황하고 아프면 울기라도 하지, 급한 마음에 물티슈를 입에 물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던 저는 아비가 되어서 더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차라리 내가 다쳤으면.
아이가 울면서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합니다. 저도 색시가 보고 싶었습니다. 더 조심할 걸. 무슨 전문 산악인이라고 아이를 업고서 내려왔나. 아니 처음부터 이런 날씨에 산행이라니. 뭐 대단히 가정적인 남편이라고 아이를 데리고 나오나, 그냥 집에 있지. 꼬리를 무는 자책이 내내 괴롭혔습니다.
피가 멎고 울음을 멈추었지만 집에 빨리 가고 싶다면서 기운이 없습니다. 식당에서 밥 안 먹겠다고 토라져도 화낼 수 없었습니다. 아이스크림도 사주었습니다. 외투 입지 않겠다는 고집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아픈 것도 속상한데 그게 제 탓이라고 생각하니 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빨리 색시가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엉뚱한 바람이 생깁니다. 아빠 노릇도 제대로 못한다며 욕 한 바가지 먹으면 차라리 속이 시원하겠습니다.
우리의 첫 산행은 이렇게 아픈 추억으로 남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 품에 안겨 아빠의 만행(?)을 일러바치는 아이를 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도 다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보고 싶은 색시를 만났으니까요.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는 별 일 아니었다고 태연한 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