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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뭐였지

아빠의 꿈을 찾아봐

by 나귀새끼

"아빤, 꿈이 뭐였어?"


선유가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입니다. 친구와 무슨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한껏 들뜬 목소리로 자기는 화가가 꿈이랍니다. 그 나이 또래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늘 바뀌는 꿈이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듣고 있었습니다. 선유는 언젠가 엄마에게도 물어봤는데, 엄마도 그림 그리는 것이 꿈이었고 지금은 미술 선생님이니까 꿈을 이루었다고 했다네요. 그런 이야길 하면서 뒤이어 아빠의 꿈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었습니다.

분명하게 대답할만한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답하는 것도 귀찮아 건성으로 "아빤 꿈이 없었어."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라서 그랬는지 선유도 그리고 성의 없이 대답한 저도 말없이 땅을 보며 걷기만 했습니다. 잠시의 정적을 깬 선유의 한 마디는


"그럼, 지금부터 꾸면 되지."



색시가 선유를 임신한 어느 날, 침대에 누워 색시와 태어날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태어날 아기가 어떤 아이로 컸으면 좋을까라며 평범한 질문이었습니다. 워낙 말이 없는 색시의 성격 탓에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괜한 기대나 부모 욕심 부리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도록 하자는 생각에는 서로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하려고 눕는 순간 벌떡 일어났지요.

그런데, 아이가 "아빠, 나 첼로 하고 싶어." 그러면 어쩌지?


아이의 꿈 하나 지켜주겠다는 다짐도 아이의 재능이 어떨지, 경제적 부담은 어떻게 풀어야 할지 걱정 때문에, "아이들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게 해주자"라는 말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어른 앞에서 일곱 살 선유는 태연하게

지금부터 꿈을 꾸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빠? 지금부터 꿈을 꾸라고?

꿈을 꾸는 법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걸?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잖아. 꿈을 꾼다고 다시 무엇인가 시작하려면 시간도 돈도 필요해. 너희는 어쩌니? 엄마가 이런 이야길 들으면 어떻겠어? 할머니는 얼마나 놀라실까? 아빠 친구들이 얼마나 걱정할까?


수많은 성공담이 담긴 자기계발서들이 꿈을 좇으라 하면서 어떻게 꿈을 꾸는지는 아무것도 안 가르쳐 주는 현실을 지적하던 저에게 딸내미의 목소리는 더 크게 울렸답니다. 힘들고 지친 사람에게 던지는 뻔한 응원의 메시지 같지 않았습니다.

아빠의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처자식 먹여 살리는 핑계 대지 말라는 호통 같았습니다.

아빠가 꿈조차 무엇인지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 것이 한심하다는 체념 같았습니다.

아빠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애쓴다면 지금 걱정하는 것처럼 조금은 불편하게 살아도 좋다는 배려 같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합니다. 다시 처음부터.


#아빠꿈 #다시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