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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실패한다

꿈꾸던 아빠와 다른 내 모습

by 나귀새끼

"아, 정말 좀. 빨리 오라고!"


짜증스러운 한마디와 함께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이 떨어졌습니다. 탁, 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깨져버린 액정화면은 안 그래도 짜증 난 기분을 더 북돋아줍니다. 아이들이 신기한 듯 다가왔을 때의 표정은 핸드폰 액정 깨지는 소리만큼이나 지금 기분을 표현해주기에 충분히 모순적입니다. 어디 해소할 곳을 찾아보지만, 결국 내 잘못이죠.

사실, 대형마트는 7살, 4살 두 여자아이에게는 너무 흥미진진한 것들이 많은 곳입니다. 사람도 많고 볼거리도 많아 그만큼 유혹도 많지요. 하물며 두 딸내미의 걸음걸이에 맞춰주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바쁜 길 재촉하는 아빠의 마음과 보폭을 따라가기란 더 어려울 것입니다. 어렵다고 힘들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아빠 탓입니다.


20살을 갓 넘길 때부터, 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했습니다. 그때는 아이들 앞에서 율동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겁게 보냈습니다. 내 이야기에 딴청을 피우거나 예배시간을 훼방하는 친구들 때문에 조금은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교회에서 '훌륭한 청년' 이었습니다. 저 스스로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나 드러내지는 않아도 분명 이 귀여운 녀석들과 함께 하는 것이 즐거운 것을 보니 나중에 좋은 아빠가 될 것이란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 두 딸 아이의 아빠.

첫아이 선유가 태어나기 전에는 마치 삶의 큰 통찰력을 가진 사람처럼 딸이 성장하는데 아빠로서 남겨주고 싶은 '아빠가 딸에게' 따위의 글을 써 볼 생각도 했습니다. 함께 좁은 욕조에서 딸내미에게 등을 맡기거나, 너른 마당에서 캐치볼을 하는 로망은 없었지만 왠지 아이의 눈높이를 맞추어주고 함께 수다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리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충만했습니다.

지금이요?

똑같은 책 반복해서 읽는 것이 지겨워 도망 다니고, 병원놀이 하잘 때는 '응, 아빠가 환자 할게' 하면서 누워있기 일쑤며, 누군가가 언제 가장 행복하냐고 물어 볼 때 '아이들이 잘 때'라고 대답해버리는 아빠입니다. 그나마 그저 서툰 아빠 정도면 괜찮은데, 아이가 자랑스럽게 꺼내 보인 그림을 보고 '괴물이야?'라고 대답하거나, 사람들한테는 늘 웃고 화도 잘 안 내면서 유독 아이들한테 만큼은 쉽게 모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 버리는 나쁜 아빠이기까지 합니다.


사실 제가 변했다기보다는 본래의 모습을 모른 채 '나는 좋은 아빠가 될 것이야'라는 교만함이 가득했던 것이지요. 돌이켜 생각하면 '아빠'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면서 그저 아빠란 '이미지' 만 소비하고픈 욕구가 그린 허상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 왜 그랬지?

이제 제가 할 일은 우선 저의 교만하고 막연했던 부모상을 인정하고, 조금씩 조금씩 아빠로 성장하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확인하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한 해 돌아보고 또 한 해 돌아보고, 언젠가 서툴고 못난 예전의 저를 돌아보면서 이 녀석들이 '그래, 그때 아빠 좀 그랬어.'라고 함께 웃어볼 날을 기대해 봅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그런 아빠가 조금 더 성숙하기를 잘 참고 기다려주는 것 같습니다.

2015년 일곱 살 선유랑 네 살배기 지유가, 이제 여섯 살 된 아빠가 성장하기를 곁에서 지켜봐주고 있습니다.

그래요, 설마. 이대로 머물러 있지는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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