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두기이건 말건 신났던 그때
나는 운동을 잘 못한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야구, 축구는 사내아이들에게서 빠질 수 없는 놀이였지. 운동장, 공터, 아파트 주차장까지 매일 몰려다니며 시합했다. 편을 나눌 땐 언제나 제일 잘하는 두 녀석이 가위바위보로 한 명씩 선택해 팀을 구성한다. 그나마 양 팀의 균형을 맞추기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난 늘 제일 마지막에 선택되는 두 명 중 하나였다. 모인 수가 홀 수 일 때는 제일 마지막에 이긴 녀석이 날 가져간다. 이겨도 머릿수 하나 이상의 큰 의미는 없다. 깍두기 아닌 깍두기.
잘 하는 아이들이 항상 도맡은 포지션은 야구일 때 투수, 축구일 때 공격수이다. 그 녀석들은 포수나 외야수, 수비수나 골키퍼도 잘하지만 그런 것은 원래 나처럼 못하는 녀석들의 몫이다. 내가 투수나 공격수를 하지 못해서 서운해 본 적은 없다. 시합에 이기기 위해서는 점수를 내는 것이 중요하니까. 운동을 못해도 그 정도는 안다. 다만, 점수를 내 줄 때마다 화를 내는 친구들 때문에 기분 나쁠 때가 많았다. 나는 저희들이 점수 내지 못한다고 화내지 않는데 말이야. 심지어 제 분에 못 이겨 우는 애들도 더러 있다. 골은 내가 먹었는데 말이야. 처음부터 가위바위보를 잘하던가.
시합을 할 때 설렁설렁 대충 해 본 적은 없다. 축구 한 시합하는 동안 발에 공 몇 번 닿은 적 없어도 늘 열심히 뛰었고, 방망이에 공이 닿은 적 없어도 늘 타석에서 포볼을 기대하며 진루를 준비했다. 깍두기의 활약은 바로 다음 시합 이긴진(가위바위보) 편 가르기에서 몇 번째로 호명되느냐로 드러난다. 하지만 열심히만 뛴 것은 성과에 들어가지 않는다. 잘하는 애들도 열심히 하는 건 마찬가지고 성과는 늘 그 녀석들의 몫이니까.
중고등학교 때는 농구가 많이 유행했다. 선수가 많이 필요하지 않으니 깍두기도 필요 없어졌다. 나는 운동과 점점 더 멀어졌고, 지금은 누가 같이 하자고 해도 잘 안 한다. 어른들 사이에서는 가끔 귀한 몸이기도 하다. 족구 시합 한 번 하려 해도 팀 구성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니까. 물론 깍두기(족구에서는 개발로 통하는)는 익어봐야 깍두기이기 때문에 그냥 머릿수의 의미밖에 없다. 머릿수가 필요할 때는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 같이 즐기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이기는 시합이 가장 즐겁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기기 위해서 그들이 늘 공격수와 투수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어릴 적에는 깍두기라도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정말로 즐거웠는데, 지금은 기회도 별로 없고 혹시 생기는 기회도 매번 꺼린다. 지고 싶지 않아서일까? 잘하는 이들에게 타박을 듣고 싶지 않아서일까?
문득 깍두기이건 말건 신나게 놀던 그때가 생각난다.
찰리 브라운, 걱정 마. 조금 있으면 넌 늘 야구시합에서 투수를 도맡아 하게 될 거야. 던지는 공마다 타자가 쳐내긴 하겠지만.
#추억 #친구 #시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