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말로 감정을 강요하는 방법
평소와 다름없는 주말 대형마트 방문. 장보기를 겸하는 나들이 코스에 꼭 들르는 곳은 장난감 코너다. 한참 이것저것 구경하고 나서 둘째 녀석은 미련이 남았는지, 장난감 더미를 뒤적거린다. 마치 살 것을 고르는 것처럼. 지난주에 이미 설 세뱃돈으로 원하는 것을 득템했지만, 역시나 오늘 또 새롭게 보이기 마련이다. 아내가 얼른 손을 빼라고 다그치며 카트를 끌고 앞선다. 녀석이 잔뜩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괜히 아빠에게 다가와 배를 한번 툭 친다.
“지유야, 예쁜 표정 지어야지.”
녀석의 기분이 어떨는지 뻔히 알면서 나는 괜한 말을 건넨다. 예쁜 표정이 나올 리 없다. 다행히 먹거리 코너로 층을 옮긴 뒤엔 아까의 실망감을 잊었는지 금세 밝아진다. 그래, 엄마 말대로 집에 장난감 많잖아, 기분 풀어.
아이를 타이르며 이른 말이 문득 떠올라 계속 곱씹는다. 예쁜 표정, 예쁜 표정…. 나는 그때 왜 “예쁜 표정”을 지으라고 했을까. 평소에 늘 에둘러 표현하는 나다운 말이긴 하다.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화를 풀라는 의미였노라. 하지만, 깊이 생각해서 일부러 그렇게 표현했다기보다는 그냥 ‘화’ 나 ‘기분 나쁨’이라는 부정적 어휘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습관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이의 기분을 이해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부정적인 감정을 얼른 제거하고 싶은, 그래서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내 욕심이 더 앞섰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예쁜 표정”이란 말을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돌이켜 보면, 나 때문에 분위기 망치는 것이 두려워 애써 감정을 감추거나 내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았던 적이 많았다. 누구한테 그래야 한다고 배우지 않아도 경험에서 오는 나름의 처세가 몸에 밴 게다. 한편, 어릴 적부터 아빠에게, 어른들에게 “예쁜 표정” 짓기를 요구받는 딸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지금이야 감정이 그대로 표정에 드러나기 마련이니 쉽지 않겠지만, 조금만 더 자라면 순간 억지웃음 짓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터다. 아빠가 말한 예쁜 표정에는 화를 풀라는 위로의 속뜻이 있다는 걸 알아도, 예쁜 표정만으로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해소할 수는 없다. 당연히 감정 변화의 속도보다 빠르게 표정 바꾸는 걸 먼저 터득하겠지. 그리고 부모나 타인들은 그것으로 만족하겠지. 예쁜 표정을 지었으니까, 기분이 좋아졌을 거야. 아니, 적어도 지금 이 분위기를 망가뜨리지 않았으니 잘한 거야. 실상 본인은 감정이 어떻게 해소했는지 전혀 관심 없는 채로 말이다. 그야말로 강요 아닌 강요를 한 꼴이다. 신체의 강요이자 감정의 강요.
언제나 다짐하길, 아이들이 제 생각 드러내길 두려워하거나 조심스러워하지 않도록 키우고 싶었다. 덕분에 한껏 되바라진 따님들 상대하느라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때로는 버릇없는 아이처럼 보일까 걱정도 되지만, 적어도 잘못된 권위 앞에서 순종적으로 살지는 않길 바랐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의식하지 못한 채로 감정을 강요하고 있었다. 나야말로 예쁜 말로 점잖게 말이다. “너 표정이 왜 그래?”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면서.
앞으로는 아이들에게 예쁜 표정 따위 요구하지 말아야지. 똥 씹은 표정일 때 무슨 똥을 씹어 그랬는지 물어봐야지. 기분이 나쁘면 나쁜 대로 내버려둬야지. 상한 감정을 해소해 줄 방법을 묻고 찾아야지. 그렇게 해결해야지. 벌써 다짐할수록 피곤해질 내 삶이 걱정된다. 혹시 우리 딸들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고 공기를 무겁게 만들거나 여러분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냥 가정교육이 잘못된 셈 치세요. 맞습니다. 제 탓입니다.
엄마도 잘 안 하는 예쁜 표정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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