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그런 핑계 대지 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오, 축하해."
보통의 남편이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듣고 반응할 적절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조카나 친구에게 아기가 생겼다면 이 정도 반응이었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밖에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원치 않던 임신이나 계획에 없던 임신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선유가 찾아왔습니다. 아빠가 될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는 저에게 말이죠.
준비 없는 만남은 이렇게 시작부터 무언가 한참 모자랐습니다. 저도 총각 때에는 TV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아내가 임신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뻐서 색시를 안고 빙글빙글 돌거나, 회사에서 문자를 받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리 지르며 자랑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진짜로 내가 아빠가 된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어떻게 기뻐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서툴렀습니다. 어쩌면 색시도 그때 무척 서운했을지 모릅니다. 색시의 성격상 그 날을 기억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혹시라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않을까 두려워 7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날에 대해서 물어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색시는 임신 관련 책을 서점에서 사 왔습니다. 임신 주차별로 신체의 변화와 배 속 아기의 성장, 그리고 태어나고 나서 유아 성장기까지 친절하게 잘 안내하고 있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태교에 도움이 될만한 몇 권을 더 샀습니다. 저도 제목에 '아빠'라는 말이 들어가는 책을 한 권 샀습니다. 책 제목을 기억을 못합니다. 내용은 더 기억이 안 납니다. 조금 읽다 말았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색시가 구입한 책도 같이 읽어야 했습니다. 같이 읽고 이야기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빠가 도와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합니다.
서툴고, 잘 모른다는 핑계로 저는 아빠로 노력하기를 게을리했습니다. 모든 것을 '엄마'에게만 맡겨버렸습니다. 아무렴 엄마가 알아서 잘 하겠지. 나는 그냥 시키는 것만 잘하면 되겠지. 우리 색시는 똑똑하니까 알아서 잘 할 거야.
저는 좋은 아빠이기 보다는 좋은 남편이 되겠노라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평소에는 잘 못하다가 아내가 임신했을 때만 떠받드는 남편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말만 번지르하게 하고 막상 현실에서는 임신했을 때도 아기를 난 이후에도 좋은 아빠는커녕 좋은 남편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색시는 좋은 아빠가 좋은 남편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남편은 큰 기대가 없나 봐요.
육아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은 이제 선유가 곧 8살이 되는 순간에서야 생겼습니다. 핑계는 둘째 지유가 찾아왔을 때에도 여전했습니다. 지유 동생이 생기면 잘할까요? 글쎄요. 그건 색시가 더 싫어할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