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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바스 Jun 04. 2021

이 웹소설은 그런 작품 아닙니다 #01

웹소설 오디오 드라마 만들기

2019년 처음 웹소설 오디오 드라마를 기획했다. 지금껏 극화 콘텐츠는 단편 소설의 드라마를 제작해 왔었다. 처음으로 장편 웹소설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이다. 가능성 있는 웹소설을 선별하여 제작 예산과 배역 캐스팅까지 구분하여 보고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당시 웹소설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네이버는 첫 웹툰, 오디오 드라마 제작에 큰 관심이 있었고 그에 맞춰 20가지 정도 되는 작품들을 선정하여 제작 요청 메일을 우리에게 보내왔다. 


메일 본문을 확인해 보니 국내 유명 웹소설, 웹툰 플랫폼의 링크와 다양한 작품들이 공유되 있었다. 링크를 클릭하자 화끈한 제목들로 구성된 웹소설 표지들이 눈에 띄었다. 사무실에서 아무 생각 없이 클릭했다가는 변태로 오해당할 것 같아 누군가 나도 모르게 스크롤을 최소화시켰다.


엄연한 일인데 숨겨서 하니 더 수상하다. 결심하고 당당한 표정으로 사무실에서 수위 높은 표지로 장식된 웹소설을 열어 읽기 시작했다. 괜히 주변 동료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우리 회사 처음으로 첫 장편 웹소설 제작을 담당했다. 워낙 큰 프로젝트였기에 네이버 담당자님은 술자리 내내 계속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처음 진행하는 오디오 드라마 타이틀인 만큼 내부 임원까지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큰 규모의 제작비와 무려 1200분 이상되는 웹소설을 오디오 드라마로 제작하는 것은 사실 모두에게 부담이었다. 팀장님과 과장님도 날 믿고 처음 타석으로 보낸 것도 있지만 두 분도 먼저 처음으로 타석에 서는 것은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실패의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퀄리티에 대한 부분, 추후 오디오 드라마 지속 가능성 등 모든 부분이 엮여 있기 때문이다.


제작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장편 웹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을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성우분들의 배역을 구분하여 캐스팅하고 배정해야 한다. 웹소설 특성상 특히 주인공의 목소리 선정은 가장 중요하다. 기존 웹소설 팬분들의 니즈와 성우 팬분들의 니즈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목소리를 캐스팅해야 한다.


다음으로 여러 성우님의 스케줄을 모으는 일이다. 바쁘신 성우님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는 녹음 일정을 잡기 어려웠다. 성우시장 내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와 실력이 인정된 성우진으로 구성했기에 스케줄 맞추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결국 녹음 시간은 평일 새벽으로 고정됐다. 작업하는 동안은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제작과정에 있어서 대응하는 방식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깨닫게 됐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우리 회사에서 로맨스 웹소설 전문 제작자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 뒤로 오디오 드라마만 지금껏 제작하고 있다.     


그러던 중 남성들의 반응이 좋은 웹소설 제작 의뢰가 들어왔다. 나는 팀장님의 지시로 이 작품을 맡게 됐다. 처음 작품 제목을 봤을 때 깜짝 놀랐다. 주변에 있던 동료들은 나를 변태취급하며 사무실에서 제목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 <오피스 누나 이야기>라는 제목이었다. 스토리는 회사 로맨스로 남성들이 좋아하는 어느 정도의 19금 수위를 담고 있는 작가님의 반사실적인 이야기로 구성된 웹소설이었다.


주변 동료들이 놀리듯 나에게 말을 걸었다.

"와~ 아침 출근 하자마자 9시부터 읽기에는 너무 뜨거운데?"


원고를 확인하기 위해 뷰어를 열고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다. 첫 페이지부터 표현들이 날카로웠다. 여주인공의 가슴선과 속옷을 묘사하기도 하고 성적 흥분인 상태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읽다 전혀 다른 느낌의 소설을 처음 접한 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괜히 카페에 다녀왔다.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부여잡고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며 눈을 부릅뜬 채 읽기 시작했다. 다행이었다. 자극적인 내용이 있긴 했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용도 흥미로웠다. 수위가 높은 장면이 많을 경우 함께 작업하는 성우님들께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겠지만 다행이었다. 


미세먼지가 뿌옇던 4월 어느 날 작가님과 네이버웹툰 담당자님과 미팅을 했다. 작가님은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차분한 동네 형님 같았다. 작가님의 말투와 성격을 알고 나니 어울릴만한 캐스팅 구성이 떠올랐다. 일단 작품의 중요한 포인트는 "내레이션" 낭독이었다. 1인칭 형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는 성우분을 캐스팅하고 풀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남주인공은 모쏠처럼 연애에 답답한 고구마 같은 느낌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과 네이버웹툰 분들께 작품 기획과 연출 방향에 대하여 프레젠테이션 했다. 최대한 원작을 살리면서 연애에는 무뇌 하지만 모쏠 같은 주인공이 더 멋지게 부각될 수 있는(?) 캐스팅과 연기에 대해 어필을 강조했다. 감사하게도 모두 이견없이 나의 제작 방향에 동의해 주셨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반 회사원의 느낌을 살리고 답답한 느낌을 가져갈 수 있는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필요했다. 답답하면서도 멋진 목소리는 어디 없을까?  아무것도 꾸며지지 않은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마음이 담긴 1인칭 내레이션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출연자가 필요했다. 사무실에 앉아 창밖을 보며 지금껏 봤던 연극을 떠올렸다. 1인칭 시점 내레이션으로 구성된 연출가의 작품에 매번 출연하던 배우님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다행히 정원조 배우님과는 팟캐스트 출연에 인연으로 함께 작업을 했었고, 오디오북 낭독에 몇 번 요청드려 같이 작업한 경험이 있었다. 그렇게 바로 전화를 드렸다.


"아, 배우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연락드렸어요. 잘 지내시죠?"

"그럼요, 피디님도 잘 계시지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 <오피스 누나이야기>라는 오디오 드라마 주연으로 캐스팅하고 싶어 연락드렸어요"

"네!?"


웹소설 제목이 불법 성매매 혹은 회사 사내 연애와 같은 이상한 느낌을 담고 있어 오해가 있을 법했다. 수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배우님의 반응이 덤덤했지만 뭔가 놀란 것 같았다. 제목으로 인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제목이 조금 깜짝 놀랄만한 작품이에요, 근데 전혀~ 그런 작품은 아니고요, 회사 동료분과의 진솔한 사랑이야기입니다 ^^"


회사 사무실에서 전화를 하고 있으니 팀장님, 작가님 주위 동료들이 킬킬 웃고 있었다. 민망하기도 했지만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설명했다. 캐스팅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니 배우님은 흔쾌히 오케이 하셨다.


다음은 여자 주인공 역을 맡을 출연자가 필요했다. 이지적이면서 따뜻한 음색을 가진 성우님을 캐스팅하고 싶었다.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의 성우님이 없었기에 여러 오디오 콘텐츠와 유튜브를 찾아보던 중 이보희 성우님을 찾게 됐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확신이 들었다. 30대 후반의 커리어 우먼으로 똑 부러지지만 따뜻한 목소리를 가진 캐릭터를 바로 연상시켰다. 함께 작업한 적이 없었던 터라 연락처를 확보하고 메시지를 남겼다. 


"성우님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 오디오 드라마에 캐스팅드리고자 연락드렸습니다"

"아 네네 안녕하세요, 어떤 작품일까요^^?


혹시나 민망해하실까 내가 바로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오피스 누나 이야기>라고 하는 작품인데요"

"...."

"아 아뇨아뇨아뇨아뇨! 그렇게.. 좀... 뭐... 아... 그 그... 생각하시는 작품은 절대 아닙니다! 같은 회사 동료분과의 진솔한 사랑이야기가 담긴 웹소설이에요"

"아~~~ 그렇군요.."


제목이 너무 낯 뜨거운 가? 주위 동료들이 계속 비웃었다. 캐스팅 전화를 하며 당황하지 않겠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건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다행히 두 주연의 캐스팅은 잘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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