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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걸 Feb 27. 2024

다시 대리가 될 수 있다면?

대리가 그리운 스타트업 대표의 이야기 

2020년 3월 퇴사 당시 내 직급은 대리였다. 국내 최대 규모 홍보 대행사에서 일했었는데 '국내 최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전사 인원 220명 정도 되는 중소기업 홍보 대행사였다. 나는 17명의 동기들 중 입사 평가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서 조기 진급 대상자가 되었고, 1년 9개월만에 수습사원에서 사원으로, 사원에서 대리가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창업을 꿈꿨던 것은, 우리 조직 60여명 중 90%가 여성인 회사 선배들 중 워킹맘이 단 한 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누군가 임신이라도 하면 경영지원실에서 쫒아와 임신 사실을 축복인듯 비아냥인듯 전사에 떠벌리는 장면들을 목격하고는 회사를 다니면서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뭐든 잘해내고 싶은, 목표와 결과에 목매는 삶을 살았다. 문제는 무엇이든 잘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바보같은 생각인지는 몰랐다. 이제서야 좀 알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회사에 처음 들어간 2017년도부터 2020년까지 나는 미혼이었지만 항상 결혼과 출산 그리고 그 이후를 생각했다. 막연했지만 나는 완벽한 가정과 그 속의 나를 그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일을 하며 일도 하고 육아도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일도 하고 육아도 하는 지금의 내가 생각해보면, 맞기도하고 틀리기도 한 생각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육아를 하는 것은 명확하게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자기의 일을 하면서 일을 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어려운 일이다. 특히 나의 일이라는 것이 작은 규모의 사업인 경우에는 오히려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가 더 어렵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퇴사를 하고 내 사업을 해보니 개인 시간이란 것이 없다. 여기서 알아둬야 하는 점은 내가 하는 사업은 오프라인 기반의 카페나 식당이 아니다. 온라인 기반의 서비스를 하고 있음에도 서비스 운영, 품질 관리, 상품 기획, 광고, SNS 관리 등 신경써야 할 일이 한 둘이 아니다. 팀원이 많지도 않기 때문에 팀원과 업무를 나누기도 여의치 않다. 업무를 나눈다함은 바로 급여와 직결되는 일이니까. 최대한 내가 많은 일을 하고자 했고, 하고자 한다. 이게 올바르다라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장의 상황으로 그렇다. 


아무튼, 그럼에도 창업을 하고 한 3년 정도까지는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이 많이 벅차긴해도 다시 누군가 밑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답답증이 밀려왔다. 실제로 회사를 다닐 때도 업무 역량 개발과는 담을 쌓고 아첨꾼으로 변질된 선배들을 보며 마음에 불이 일었던 나다. 하지만 최근에 전 회사 선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선배도 육아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며 창업을 한 상태였다. 


선배가 물었다. '다시 회사 다닐 수 있을 거 같아?' 내 대답은 나조차도 의외였다. '네, 그러고 싶어요.' 다시 대리, 혹은 나의 성과들을 잘 쳐준다면 과장이 될 수 있겠지. 다시 선후배들과 함께 일하며 다른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경험하고 싶다. 내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고, 안전한 회사의 울타리 안에서. 물론 계속 다니고 싶다는 건 아니다. 지금 나는 일시적으로 (일시적이기를 바란다) 길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렇게 브런치를 다시 시작한 것이 길을 잃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증명한다. 이 서비스를 접고 내가 첫 서비스를 시작할 때 몰랐던 것들(시장, 고객, 팀 등)을 보완하여 다시 해보고 싶다. 


그런데 지금은 여력이 없다. 매일 이른 아침에 아기와 함께 일어나 오전까지 육아를 하고, 엄마가 오시면 카페를 2-3시간 일하고, 남편이 퇴근 한 다음 육퇴 후 일을 하고 나면 거의 자정이 된다. 뭘했다고(?) 싶지만 늘 그렇다. 그래서 잠시 휴식기를 가지고 싶다. 대리든 과장이든 대표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 6개월, 아니 3개월 뒤 나는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추신. 지난주 금요일 시작했던 가입 이벤트가 실패했다. 이젠 놀랍지도 않은 가설 설정과 검증의 과정. 창업을 하며 한 주에도,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실패를 하는지. 실패는 익숙하기도 익숙하지 않기도 하다. 마음이 쓰리지만 쓰라림을 느낄 시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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