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없는 열심
20여 년 전, 잠시 건설 현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현장 소장이 인척이었고, 규모가 크지 않은 현장이라서 일용직 관리, 안전 관리, 기초세무 전반적인 업무를 맡았다. 그중 가장 비중이 컸던 업무는 매일 출근하는 일용직 근로자들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거의 매일 사람이 바뀌는 데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처지의 이들에게 책임감이나 열심을 요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혹여 무리하게 일을 독려했다가 안전사고라도 나면 골치가 아픈 법이라, 주로 단순한 작업 위주로 배정하곤 했다. 어쩌다 보기 드물게 성실한 분을 만나면 다음 날도 꼭 나와달라 부탁하며 간식비라도 더 챙겨드렸다. 비록 일용직일지라도 일하는 뒷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을 대하는 자세가 어느 정도 투영되기 마련이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꾸밀 수 있어도, 몸이 내뱉는 언어는 좀처럼 감추기 어려운 모양이다. 한 번은 너무 성실하게 일하기에 전직을 물었더니 부흥사 경력이 있는 목사님이라고 하셨던 분도 계셨고, 숙련공 수준의 근로자분은 인연이 돼서 정직원으로 채용되기도 했다. 반면, 십수 년을 일용직으로만 전전하는 이들도 있었고… 그 세월이면 충분히 숙련된 기능공이 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말이다.
어느 저녁, 협력업체 직원과 저녁 겸 술을 한잔하고 있었다. 마침 뒷자리에는 얼마 전 우리 현장에서 일했던 일용직 두 분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거하게 취한 탓인지 나를 알아보지는 못하는 듯했다.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 넋두리 섞인 신세 한탄이 이어졌다.
“우리는 이렇게 매일 쉬지도 않고 진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데, 왜 삶은 이토록 힘든 걸까?”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짠했다. 나 역시 개인사의 어려움으로 잠시지만, 현장에서 구르는 처지라, 그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론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열심'과 '최선'이라는 단어. 각자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참 신중히 써야 하는 말이다. 육체노동이든 지적 노동이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성장'이 필수적으로 동반될 때 비로소 빛이 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열심과 최선을 다하고도 늘 제자리걸음이라면, 그 단어들은 가짜이다.
그때 그분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오래전 기억을 반추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지금, 성장이 동반되는 진정한 열심을 다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