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 Jones의 'Green, Green Grass of Home'을
나른한 주말 오후,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흐르는 어느 색소폰 연주자의 멜로디가 귀를 붙잡는다. 그 깊고 중후한 소리에 취해 나도 모르게 악기를 꺼내 들었다. 반주기에 맞춰 따라 불어 보는 톰 존스(Tom Jones)의 명곡, 'Green, Green Grass of Home' 역시 옛 팝송이 주는 특유의 매력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문득 궁금해져 가사를 찾아보았다. 경쾌한 컨트리풍 멜로디라 마냥 신나는 고향 노래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연은 꽤나 비극적이었다. 노래 속 주인공은 감옥에 갇힌 사형수다. 그는 꿈속에서 고향 집으로 돌아간다. 기차역에는 마중 나온 "마마, 파파"가 있고, 예전 좋아했던 갈색 머리의 여인도, 어릴 적 뛰놀던 오래된 참나무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다.
하지만 눈을 뜨면 차가운 회색 벽이 그를 가로막고 있는 감옥이다. 슬프고 절망적이다. 결국 그는 죽어서야 그 그리운 푸른 잔디가 있는 고향에 갈 수 있다는 내용이다. 비록 큰 죄를 저지른 사형수이지만, 꿈속에서만큼은 그 시절의 여드름 투성이 개구쟁이였고, 순수했던 청년이었을 것이다.
흥겨운 멜로디 뒤에 숨겨진 이 애절한 사연을 알고 나니, 색소폰을 부는 마음이 한층 더 묵직해지고 가슴에 와닿았다. 갈 수 없기에 더 그리운 마음... 그 시절의 순수하고 착한 아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그리고 지금의 잘못된 자신을 보며 한없이 속죄하는 마음이 내게도 전해져 온다.
사무치게 그리운 고향 집, 애절하게 짝사랑했던 유치원 소꿉친구, 마음을 달래주던 우리 집 마당의 검둥이 강아지... 어렴풋한 옛 추억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내 나이쯤 되니 꺼내 먹을 추억거리가 제법 남아 있다는 게 감사하다.
추억을 되새기다 보면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어릴 적 순수했던 동심이 그립기도 하고, 때 묻은 지금의 모습이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잠시나마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지나간 추억은 다 아름답다. 그 모든 시간이 쌓여 어찌 되었든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정신건강에도 좋고 말이다.
문득 요즘 아이들은 어떤 추억을 쌓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 숲에서 자라는 현대의 아이들에게 '고향의 푸른 잔디' 같은 정서가 있을까? 그들의 어린 시절은 우리 때보다 조금은 더 각박하지 않을까?
소위 '라떼는 말이야' 시절, 설날이나 추석이면 온 동네 아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색동 한복을 차려입고 골목을 누볐다. 옆집, 앞집 할 것 없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어른들께 세배를 올렸다. 옆집 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세배하고 용돈이나 먹을거리를 받아 가면, 나도 질세라 '복수(?)'하듯 그 친구네 집에 쳐들어가 세배를 했다.
그때 우리는 용돈 벌 생각에 꽤나 심각하고 비장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어른들 눈에는 얼마나 귀엽고 재미있는 풍경이었을까. 용돈 몇 푼 주는 게 대수였겠는가. 온 동네가 내 집 같고, 온 동네 어른이 내 부모 같았던 그 시절의 정(情)이 사무치게 그립다.
만약 지금이라도 설날 아침에 옆집, 윗집 아이들이 쭈뼛쭈뼛 찾아와 세배를 한다면, 나는 정말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용돈이 문제겠는가, 그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요즘 같은 삭막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언감생심(焉敢生心), 꿈도 꾸기 힘든 일이 되어버려 씁쓸할 뿐이다.
나는 오늘도 톰 존스가 부르는 'Green, Green Grass of Home'을 다시 듣는다. 색소폰 소리에 실려 오는 멜로디 속에서, 이번에는 그 옛날 함께 뛰어놀던 교회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우리의 지나온 긴 인생의 시간 속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들. 그 추억들이 잊히지 않도록 자주 꺼내어 기억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언젠가 우리가 생을 마감할 때, 그 아름다운 추억들 중에 제일 행복했던 기억 하나를 떠올리며 평안히 눈 감을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