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밖에서 다시 만난 예수

by 단단

내 유년기, 학창기 기억의 8할은 교회다. 내 오래된 사진첩에는 교회 주일학교 단체 사진들이 빼곡하다. 할머니, 어머니 때부터 이어온 신앙 덕분에 나는 유아부 꼬마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교회 마당을 밟으며 자랐다.

성인이 되어서도 내 삶은 교회 울타리 안에 있었다. 집사, 성가대, 구역장... 교회 내 중책들도 두루 거쳤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신앙이 남들보다 돈독해서라기보다는 그저 교회 밥 먹은 연수가 오래되니 자연스레 맡겨진 감투였다. 삼촌 세 분 중 두 분이 목사님이시고, 사촌들도 대부분 전도사, 권사, 장로인 집안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물론, 나는 나를 키워준 이 종교적 환경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하지만 결혼 후 큰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무렵, 나는 교회 출석을 멈췄다. 어느덧 20년 전 일이다.

내 안의 신앙은 뜨겁지 않은데 습관처럼 다니는 게 싫었고, 교회 내의 부조리한 모습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이대로 취미 생활하듯 다니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잠시' 멈춘다는 것이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시간이 흘렀다.

교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니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의 문이 열렸다. 교회 다닐 때는 감히 의심조차 하면 안 될 것 같았던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절에도 가보고, 이단이라 손가락질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종교를 비판하는 서적들도 탐독했다. 권사님, 장로님이신 친척분들은 이런 나를 보며 마치 큰 사고 친 사람 마냥 걱정하셨지만, 나는 오히려 이 혼란 속에서 나만의 영성이 조금 더 깊고 진 것을 느낀다.

지금은 궁금하면 검색 한 번으로 수만 가지 답을 얻는 시대다. 목사님 개인의 주관적 경험에 의존한 설교보다, 방대한 데이터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주는 AI나 인터넷이 성경 해석에 더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예전 목사님들이 설교시간에 "TV는 바보상자고 마귀다", "나이트클럽 가면 지옥 불에 발이 덴다"라고 했던 으름장을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얼마나 성도들을 우매하게 봤으면 그런 1차원적인 협박을 했을까 싶다.

나는 우리가 이제 '강단 위의 해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사님의 권위적인 해석을 맹목적으로 따를 게 아니라, 내 삶과 이성으로 성경을 다시 읽어야 한다.

최근 나는 성경 속 이야기를 나만의 시선으로 새롭게 받아들여 봤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성경에는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로 5천 명을 먹였다고 나온다. 대부분의 목사님은 이것을 예수가 음식을 뻥튀기 기계처럼 불려낸 '초자연적 현상'이라고 설교한다.

하지만 나는 의문이 든다. 예수가 고작 마술 실력을 자랑하려고 그런 일을 벌였을까? 왜 그런 기록을 남겼을까?

상상해 보자. 예수가 산에서 설교할 때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끼니때가 되었고 배들이 고팠을 것이다. 그 옛날에 도시락이 변변했겠는가? 사람들은 저마다 집에서 가져온 고구마며, 소금에 절인 생선 토막 따위를 품속에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 혹여나 꺼냈다가 나눠줘야 할까 봐, 나 먹을 것도 부족하니 꽁꽁 숨기고 있었겠지.

그때, 한 어린아이가 자기가 가져온 작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예수께 내밀었다. "선생님, 시장하실 텐데 이거라도 드세요."

그 광경을 본 어른 5천 명(성경엔 장정만 5천 명이라 기록돼 있다)은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얼굴이 화끈거리고 창피했을 것이다. 다 큰 어른들은 내 배 채우려고 먹을 걸 꽁꽁 숨기고 있는데, 저 조그만 아이가 자기 전 재산을 내놓았으니 말이다. 그 부끄러움과 감동이 파도처럼 번졌을 것이다.

"나도 조금 보테자!"

사람들은 하나둘 품속에 숨겨둔 도시락을 꺼내기 시작했을 것이다. 십시일반, 자기가 먹을 것을 조금씩 떼어내어 옆 사람과 나누고, 미처 챙겨 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건네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 나누다 보니 배불리 먹고도 12 광주리나 남는 기적이 일어난 게 아닐까?

나는 이것이 예수가 보여주고 싶었던 '진짜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마술'보다, 이기심으로 꽉 찬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서로 나누게 만든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 아닐까.

내가 만난 '나만의 예수'는 마술사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따뜻한 사회복지사였다. 나는 오늘 성경의 행간 속에서 진짜 예수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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