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유연성

돈키호테와 산초가 가르쳐준 동행

by 단단

나는 늦깎이 대학생이고, 이번학기 교양과목 고전 수업을 통해 세르반테스가 지은 "돈키호테"를 접했다. 코믹스러운 동화 같은 이야기로나 알고 있었지, 심도 있게 접하기는 처음이다. 읽기 전 작가 세르반테스의 삶을 찾아보았다. 전쟁에서 한쪽 팔을 잃었고, 해적에게 납치돼 5년간 포로 생활을 했다. 화려한 명작가의 삶 뒤에는 기구한 고난이 있었다. 그 혹독한 경험이 명작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인생에 버릴 경험은 없다.

주인공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늘 함께 다닌다. 황당한 여정이지만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곳을 보며 모험을 한다. 모험을 하는 이유는 각자 다르다. 돈키호테는 기사도 부활과 약자 구제가 삶의 목적이고, 산초 판사는 섬의 영주가 되거나 재물을 얻으려는 현실적인 목적을 가졌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간다. 그야말로 '동상이몽'이다.


"목표(目標)는 같아도, 목적(目的)은 다를 수 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목표가 있는 것이다. 목표가 눈에 보이는 방향이라면, 목적은 내면의 이유다. 두 사람은 '모험'이라는 목표는 같았지만, 그것을 하는 '목적'은 달랐다.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일이 다 그러하다.

현실에서 보면, 정치인들이 싸우는 것도 '당선'이라는 목표만 같을 뿐, 속내인 '목적'은 다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주일마다 교회에 간다는 '목표'는 같아도 누군가는 신앙을, 누군가는 위안을, 누군가는 인맥을 목적으로 예배당에 앉아 있다.

우리는 서로 내면을 다 보여주지 않은 채, 목표를 달성했느냐만을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 어쩌면 그것이 사회가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불가피한 것일 수 있다. 남의 속내를 낱낱이 다 들여다본다면, 당장 눈앞의 목표마저 흔들려 아무 목적도 이루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니 타인의 목적을 너무 따지지 말자. 내 나이 50대 중반, 이제는 목표만 엇비슷해도 함께 어울려 잘 살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지려 한다. 돈키호테와 산초처럼 서로 안 어울리는 조합일지라도, 가는 방향만 같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젊은 시절엔 삶의 목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비난하거나 무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속내인 목적이야 어찌 되든 어떠한가. 그저 내 주위에 나와 목표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면 기꺼이 어울리자. 그 정도만으로도 삶에 충분히 유익하다.

앞으로 사람을 대할 때, 내면의 '목적'보다는 함께 바라보는 '목표'에 더 비중을 두려 한다. 가는 방향이 맞는 사람만 만나도 행복할 것 같다. 삶을 유연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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