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발끗에 있다
탁구는 참 얄궂은 운동이다. 지름 40mm의 그 작은 공 하나가 어찌나 예민한지, 사춘기소녀만큼이다. 3년 전 호기롭게 라켓을 잡았을 때만 해도 나는 몰랐다.
초보 탈출을 꿈꾸며 레슨을 받고, 폼이 좀 잡힌다 싶으면 책도 사고, 유튜브 영상들도 섭렵했다. 주변 고수들의 훈수에 음료수 바쳐가며 귀 기울였다. "라켓 각도를 이렇게 해라", "손목을 더 써라"”코어근육이 핵심이다” 머릿속에는 국가대표급 이론이 가득 찼지만, 정작 실력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몇 달씩 탁구채를 놓기도 했다.
변화는 6개월 전, 동네에서 실력이 비슷한 파트너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우리는 매주말아침 아파트단지 내 탁구장에서 만났다. 거창한 목표도, 화려한 기술 훈련도 없었다. 그저 초보임을 인정하고 묵묵히 서로의 서툰 공을 받아냈다. 나는 그때부터 유튜브 영상도 끊고, 오직 하나, 주문처럼 공이 네트를 넘어올 때마다 “발, 발, 발”이란 단어를 되뇌었다.
"공이 오는 방향으로 "발"을 움직여라."
수많은 훈수와 이론을 뒤로하고, 그저 발을 떼는 것에만 집중했다. 안 되는 동작은 될 때까지 쳤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머리로 이해하려 할 때는 도망가던 공이, 몸이 반응하기 시작하자 라켓에 척척 감기기 시작한 것이다. 복잡한 이론과 잔기술들이 사라진 자리에, 스님들 새벽예불 목탁소리만큼이나 경쾌하고 리드미컬하게 타구음이 울렸다.
라켓을 내려놓으며 생각한다. 우리네 인생도 이 탁구와 같지 않을까. 우리는 너무 많은 고전, 명언, 설교, 상담 속에 파묻혀 산다. 정답을 찾겠다며 머리만 굴리느라 정작 발은 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탁구를 치며 배운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그저 오늘 흘려야 할 땀을 흘리며 계속해보라고. 그러면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리듯 답이 나오고, 비로소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이 보인다고 말이다.
답은 머리가 아닌, 분주히 움직이는 두 발끝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