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일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연기하라고 불러주는 곳이 없다. 오디션 기회조차 없다. 누가 나 일 주지 말라고 시킨 것 같이 없다. 배우는 기다리는 직업이라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릴 순 없으니 오늘도 노트북을 켜 배우모집사이트에 접속한다. 그런데 이게 뭐람. 특이한 구인글을 발견한다. [단편 영화 구인글] 지원자격조건: 프리다이빙 자격증 소지자 or 수영 가능자 잠시 팔짱을 끼고 상체를 의자에 젖힌다. 왜 망설이냐고? 나는 물찌 이기 때문이다. ‘물찌질이 ’,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 ’의 줄임말로, 참고로 내가 줄였다. 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라 차오른다. 어렸을 적 엄마가 머리를 감겨주던 때였다. 좁은 화장실에 둘이 쪼그려 앉아 나는 귀신처럼 머리카락을 밑으로 젖히며 감김을 당하고 있었다. 엄마가 샴푸를 푹푹 누르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은 굳기 시작했다. 그러다 샴푸물이 얼굴 쪽으로 쪼르르 흐르자 나는 그만 그 몇 줄기의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소리를 지르며 거실로 뛰쳐나갔다. 샴푸는 눈을 따갑게 앞을 못 보게 하지, 엄마는 당장 이리오라며 소리 지르지, 물은 축축하게 계속 흐르지 정말이지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다. 이 샴푸의 요정, 아니 ‘샴푸 도주 사건’ 은 엄마의 등짝스매싱으로 끝이 나지만 이후로도 나의 물공포증은 끝나지 않았다. 워터파크는 웬 말이요, 워터밤인가 워터빔인가 3n 년 살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다. 물공포증을 이겨내 보고자 일대일로 수영강습도 받아보았지만 어쩐 일인지 마지막 수업엔 수영강사님도 내 등짝을 때리는 걸로 마무리하셨다. 일어나서 서보면 내 명치정도 오는 수심이라면서. 그런데 지금, 그 구인글을 보면서 마음이 끌린다. 프리다이빙이라.. 일단 검색을 해보기 시작한다. 수영을 못해도 가능하다, 하루 3-4시간 정도의 이론과 실습으로 1 레벨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는 말 에 굳게 마음을 먹는다. 곧장 근처 센터에 전화를 걸어 신청을 진행한다. ”수영 못해도 괜찮나요? 정말이요? 저 진짜 못하거든요! “ ”네~잘하면 더 좋지만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 말에 바로 다음날로 예약을 하고 수업료도 입금을 했다. 갑자기 반백수에게 할 일이 생겼다. 수영복도 챙기고 수영모도 챙기고 수경도 챙기며 가빠지는 내 숨도 챙겼다. 당일, 다이빙풀장 근처의 카페에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프리다이빙이 커플원데이체험으로도 많이 한다더니, 두 쌍의 커플이 더 왔다. 조금 뻘쭘하고 많이 부러웠다. 아무튼 이론 수업은 한 시간 정도 진행되었는데 인상 깊었던 말은, 프리다이빙은 보수적인 운동이라는 말이었다. 물속에서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물공포증이 있는 내겐 안심이 되었다. 모범생의 자세로 이론을 듣고 대망의 다이빙풀장으로 향했다. 아니 우리나라 사람들 취미가 다 물놀이인지 사람들이 득실득실했다. 오랜만에 맡는 그 장소 특유의 냄새와 공기, 맨발바닥에 닿는 물기는 이제 정말 물에 들어가는 것임을 실감 나게 했다. 제공해 주는 다이빙 슈트를 입고 간단한 체조를 한 후, 오리발 같은 신발을 신고 물에 들어갔다. 여자 셋, 남자 둘. 나눠서 물속에서 몸에 힘 빼고 숨 참기부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 자랑 좀 하자면 남녀 통 틀어 내가 제일 오래 참았다. 하하하하.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재능이 없는 거 아니까 더 열심히 따라가려는 마음이랄까. 또 커플들의 들어 올려주기나 챙겨주는 애정행각을 보며 더 ‘배움’에만 집중하려 했다. 속으로는 나도 다음에 남자친구 생기면 같이 와야지 이러면서. 강사님은 점점 빌드업하듯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 프리다이빙 자세를 완성해 주셨다. 이상하게 물속에서 강사님의 무서워말라는 목소리가 들리니 몸에 힘을 풀 수 있었다. 그리고 폴더처럼 몸을 반으로 착 접듯 내려가는 것까지. 내 자세는 완벽하지 않았겠지만 수경너머로 처음 마주한 물속 세상에, 잠시였지만 황홀했다. 조금 더 하다 가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프리다이빙은 버디시스템(2인 1조)이라 아쉬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가야 했다. 씻고 밖으로 나오자 물속에서 태웠던 칼로리로 배가 정말 고팠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해 '물귀신 되지 않고 살아 돌아왔노라' 전하며 집 앞의 고깃집으로 불러냈다. 삼겹살 2인분과 맥주 한 병을 시킨 후 셀프 반찬을 가져오는데, 발걸음만으로 내 기분이 보였나 보다. 그렇게 신나냐며 웃는 엄마를 보니. 그래, 반백수가 얼마 만에 느껴보는 뿌듯함인가. 남들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게 시도할 수 있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의미가 남다르다. 두려움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이겨냈다는 것이 말이다. 얼마 후 그날의 사진들과 수료증을 받았다. 이제는 지원자격조건이 되니 그 단편영화에 당당하게 메일을 넣었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래도 좋다. 날 떨어뜨렸음에도 감사할 정도로 말이다. 내가 도전하고 싶게 동기부여를 주었고 그것이 내가 두려워했던 부분이라 큰 용기가 필요했다는 점에서, 덕분에 나는 앞으로도 일단 시도해 보는 자세를 갖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아, 다이빙 사진 잘 나온 것 같다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