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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Sep 28. 2018

내 멋대로 하자

[ 타인이 내 삶의 주도권을 쥐게 놔두지 마라 #1. ]

어린 시절 나의 꿈은 원대했다. 


초등학생 때는 소림사에 가서 무도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당시 영상계를 휩쓸던 중국의 무협영화를 보며, 나는 진지하게 무술인을 꿈꿨다. 당시 어떤 개그맨이 나와서 초능력을 배운다며 볼을 스친 손바닥으로 촛불을 끄는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이것이 나의 꿈을 더욱 확실하게 만들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FBI 요원을 꿈꿨다. 내 기억이 맞다면 월요일 저녁 11시에 KBS에서 방영되었던 'X파일'이 나의 장래희망에 영향을 준 것이 틀림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영어 선생님이었던 담임이 나의 장래희망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FBI 요원이라고?'라고 되묻던 장면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땐 몰랐다. FBI 요원은 공무원이고, 내가 미국 시민이 아니면 될 수 없다는 것을. 


사실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꿈보다 좀더 구체적인 꿈이 나에겐 있었다. 나는 한의사가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 길거리에서 만난 변태에 대한 충격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합기도, 킥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원체 몸이 약한 탓에 틈만 나면 다쳐서 한의원을 찾게 되었다. 엄마는 나를 종합병원이라 불렀다. 다쳤는데 한의원을 방문한 것은 아마도 무협영화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자주 가다보니 한의사라는 직업이 '현실적인 무술인'처럼 느껴졌다. 인체의 흐름과 기를 이해하고 그것을 치료에 접목하는 것은 같지 않나 생각했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나는 당연히 한의사가 되는 줄 알았다. 학년 말에 담임과 면담을 하는데, 한의사가 되고 싶은데 성적이 안된다고 했다. 대신 수학 성적이 좋으니 문과에 가면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사실 이과에서는 한의학과 말고는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공대는 정말 가기가 싫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서 한시간만에 나는 평생 생각지도 않았던 문과로 전향했다. 그리고 그 선택을 16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후회한다. 


인생을 돌아보면 나의 진정한 꿈은 '자아실현'이었다. 그 이외의 다른 꿈은 사실 '꿈'이라기 보다는 '직업'이었다. 나는 아닌 것 같으면서도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 타입이었던 것 같다. 항상 이상을 바라보면서도, 현실에서 인정받고 싶었기에 공부를 했다. 외국어 고등학교에서 과를 선택할 때도 '소림사에 가기 위해서 중국어과를 왔다'고 했지만, 사실 중국이 부상하고 있는 국가였기에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춘기가 되었을 때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늘 생각했지만, 공부를 놓을 수가 없었다. 공부하는 것이 학생의 본분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다른 길은 없는지, 다른 선택은 하면 안되는지, 늘 의문이었지만 나는 결국 시류를 거스르지 않았다. 대학을 선택할 때도 학과를 선택할 때도 한편으론 늘 사회적 지위와 주변 상황을 고려했던 것 같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을 갔다. 통장에 매달 어느 정도 돈이 찍혔고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 미친 짓을 하지 않는 이상 향후 십여년간 짤릴 일은 없어보였다. 

그런데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이제껏 내가 이러려고 공부하고 살아왔나. 난 늘 마음 한켠에 희망과 이상을 품고 있었다. 제대로 단 한번도 실현해보지 못했고 실현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지만.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왜 그렇게 살지 않았나 싶었다. 왜 남들이 바라는, 사회가 원하는 길에 한번도 반항하지 않았나. 부모님이, 친구들이, 선생님이, 사회가, 내 삶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나 대신 행복해하지도 않을거면서. 


이때 어렴풋이 느꼈다. 내 삶을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하지 않으면,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열심히'만 산다면, 삶은 절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나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나는 내 삶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게 행복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처럼 보였다. 

어디에서부터 뭐가 잘못됐을까. 나는 '생각'을 해야했다. '나를 위한 생각'. 그래서 회사를 그만뒀다. 2013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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