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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Mar 17. 2019

협업, 그게 뭔가요

[타인이 내 삶의 주도권을 쥐게 놔두지 마라 #8.]

1인 기업도 많다. 본인이 능력이 되고 A부터 Z까지 모두 커버할 수 있다면 1인 기업이 기동성 좋고 마음 편하게 작업할 수 있어서 좋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나는 기획, 제작, 마케팅, 홍보, 디자인, 개발 이 모든 것을 하지 못 하기에 함께할 수 있는 동료가 필요했다.


2016년 처음 리서치를 시작했을 때는 혼자 시작했는데, 혼자 하면 갈팡질팡하는 경우도 많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게 좋을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 보니 사업의 범위를 좁힐 수밖에 없다.


동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디자이너가 합류하게 되었다. 업무의 속도가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로고 디자인을 했으며, 제품 디자인도 자체적으로 가능했기에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볼 수 있었다. 제품 시연을 할 때마다 디자인에 대한 칭찬을 들으니 좋은 디자이너를 둔 나는 행운아였다.


결과만 봤을 때는 그랬지만 일을 하는 과정은 정말 머리털 뽑힐 정도로 힘들었다. 역시 어딜 가나 인간관계가 제일 힘들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상대가 유하고 섬세하고 배려하는 스타일이었고, 나 또한 무난한 성격에(주변에서 그렇다고 했다) 큰 충돌 없이 삼십몇 년을 살아왔기에, 이건 조직 내에 꼭 돌아이가 한 명은 있다는 '돌아이 보존 법칙' 때문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래서 1년 6개월을 함께 작업하는 동안 너무 많아서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순간들이 왜 그랬는지 정리를 해보려 한다.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나의 감정은 기억하고 있다.  


1) 소통하는 언어가 다르다

디자이너와 일할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전 직장은 자원개발하는 곳이라 디자이너는 전무했고, 언니가 산업디자인학과 출신이지만 과거에는 언니와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예비사회적기업에서 일할 때 구성원 3명 중 한 명이 디자이너였으나 내가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경우는 없었다.


이번에는 두 명이서 일하다 보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단계에서 잡음이 많이 발생했다. 잡음이 너무 많아 주파수가 잡힌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순간들이 모여, 안드로메다 다녀올 정도라는 걸 이제야 고백해 본다... 사실 상대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미숙했던 나의 불찰이 문제의 시발점이었으리라. 하지만 일단 너그럽게 넘어가겠다. 자기반성은 알아서 해야지...


기획자는 원하는 바, 즉 일의 목표와 컨셉을 말하고 이런 레퍼런스를 갖고 작업을 하면 좋겠다고 전한다. 그런데 막상 디자이너가 초안으로 작업한 내용은 머릿속 구상물과 다르다. 그래서 이건 이렇게 바꾸면 어떨지 제안하거나, 혹은 이런 느낌은 아니고 이런 것 같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디자이너들이 얼마나 힘든지 이야기한 커뮤니티 글을 많이 봤다. 나도 안다. 힘든 거. 어쩌면 전달하는 쪽에서 명확한 내용을 주지 않은 잘못이 첫 번째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답답했다.) 디테일하게 바꾸고 싶을 수도 있지, 전체적인 그림은 좋아도 이건 이렇게 동작을 바꾸고 색감은 이렇게 하면 좋겠고, 기타 등등. 그런데 나중에는 그런 내용들을 말하는 것도 무서워졌다.


나중에는 포기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애초에 같이 일하는 작업 자체가 즐겁고 그게 일 순위였으면 좋겠다고 말한 건 나였기에 조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조율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약간 드라이한 스타일이다. 원하는 바가 있으면 그걸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그건 상대가 나의 작업물을 이야기할 때도 비슷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어쨌든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런데 업무 처리할 때는 감정적으로 부드럽게 다가가는 방법을 사용하지 못한 듯하다. 반면 디자이너는 굉장히 섬세한 스타일이었고, 말의 내용보다는 전달하는 방식을 중시했다. 또한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브레인스토밍 형식으로 의견을 나누는 것을 좋아했지만 상대는 혼자 고민하는 것을 선호했다. 즉 업무 스타일이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서로의 다름을 머리로 이해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방식을 몸으로 체득해서 실제로 적용하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다행히 우리는 지금 일할 때 서로의 이런 부분을 이해해준다. 나도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나조차 기준에 대해 모호할 때는 1)디자이너의 안목으로 전적으로 믿거나, 2)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확보하고 명확한 상태에서 내용을 전달하고자 한다.

 


2) 다른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스타트업은 함께 일을 하는 것을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급여를 주고 일을 맡길 수 없기에 나중에 수익이 발생하면 지분(개인사업자일 때는 의미가 없지만)에 따라 쉐어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투잡을 뛰면서 일을 하다 보니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허접한 물건을 시장에 내놓을 수도 없기에 첫 번째 제품의 경우 시제품 제작-테스트-완성품 까지 1년 6개월이 넘게 걸렸다. 수정을 거듭하며 돈도 많이 들었다. 제품 하나 만드는데 이렇게 많이 드는지 시작하기 전엔 몰랐다... 역시 무지하면 용감해지나 보다.


어느 정도 수익이 발생할 타이밍이 왔을 때 비로소 문제가 발생했다. 수익을 어떻게 쉐어할지 미리 논의하고 계약서 초안을 만들어 놓긴 했지만, 거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하고 도장을 찍은 건 아니었다.   

상대는 당연히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고 그에 따른 기회비용도 있기에 몇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하지만 나는 의견이 달랐다. 상대의 노력과 투자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갖고 있는 불만과 두려움이 과연 요구사항을 들어주었을 때 해소될 것인지 의문이었다. 우리는 결국 논의를 진행하다가 외부 요인에 의해서 전혀 다른 의사 결정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며 작업하고 있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초기 단계에 계약서, 특히 돈과 관련된 내용을 친분의 정도와 관계없이 깔끔하게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목표 중 하나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협업을 해보는 것이다. '협업'은 이름은 좋지만 세상에서 어쩌면 제일 어려운 것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좋은 사람들과 공동의 목표를 향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아가는 아름다운 '협업'은 계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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