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 애정 결핍

#10. 그땐 그랬지

by 수현

부모님은 부산에 계시고

나는 15년째 서울에 살고 있으며

언니는 5년 만에 호주에서 돌아왔다.


평범한 듯 조금 다른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오늘 리서치 차원에서 놀이 교육 관련 책을 보던 중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전공이 심리학이라 예전에 수강했던 '발달심리학' 수업에서 배운 구절도 생각났는데 그때랑 좀 다르게 다가왔다.

아이와의 소통에 있어서 중요한 점 중 하나는 부모의 반응성이다.


반응적인 부모님일수록 아이가 안정감을 갖고 균형적으로 발달한다는 내용을 들은 기억이 난다. 순간적으로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어릴 때 우리 집은 13층에 살았다. 초등학교 1~2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혼자서 분무기를 가지고 놀다가 앞 코를 떨어뜨렸다.

KakaoTalk_20190729_230515265.jpg


당연히 13층에서 떨어졌으니 어디로 떨어졌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이성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나는 너무 어렸고 감상적이었나 보다) 나는 굳이 그게 경사진 풀밭에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곳은 철조망 같은 게 있어 긁힐 수 있는 위험한 곳이었다.

KakaoTalk_20190729_230515633.jpg

그때 나는 울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해서 다치면 엄마가 봐주겠지.


지금 생각하면 소름 끼치는 생각을 고작 10살 정도밖에 안된 어린아이가 했다니.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그런데 엄마가 나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사랑을 느꼈던 순간들이 있는데, 그 당시 어린이가 느끼기엔 부족한 사랑이었나 보다. 성인이 되어서 엄마에게 살짝 이런 이야기를 흘린 적이 있는데 엄마가 '미안하다'라고 사과를 했다. 이런, 내가 예상한 말은 이게 아니었는데. 안타까운 점은 한두 가지 아니다.


1) 부모가 생각한 애정 표현과 아이가 받아들이는 것은 확연히 다를 수 있다. 선호표상체계에 따르면 인간의 강점은 제각기 다르기에 청각, 시각, 촉각 등 개인이 선호하는 표상에 맞춤형으로 소통하여야 라포를 형성할 수 있다고 한다. 그에 맞게 소통하지 않으면 결핍을 느낄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촉각형인데 엄마는 시각형이라서 그냥 바라봐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다면 아이는 결핍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 부모도 처음이다. 나는 아직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지만, 우리 엄마가 나를 낳고 길렀던 때의 나이를 고려하면 참 어렸구나 싶다. 그런 걸 고려할 때마다 엄마도 처음이어서 뭐든 다 서툴었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정보의 공유도 원활하지 않았기에 양육에 대한 민감도도 높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처럼 정보가 많은 시대라고 다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스카이 캐슬'에 나왔던 것처럼 본인의 욕망을 아이에게 투영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걸 보면 부모님이 되는 과정에도 배움, 조언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3) 어린이는 불만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어릴 때 엄마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엘리베이터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며 시위한 적이 많았다. 엄마는 그때마다 왜 밖에서 기다리냐고 물었었는데 그때 왜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가 빨리 오길 원해서 그랬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발생한 일로 치부하려 했는데, 다른 학생들을 만나보니 과도한 공부량과 부모와의 소통 부재로, 의사표현은 둘째치고 자신의 감정 상태가 어떤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런 건 아닐 테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까, 해결까진 아니더라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한다. 부모-자녀와의 대화 키트를 구상 중인데 실질적인 효과를 위해서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인슈타인도 정리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