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 본 적 없는 사람은 모른다

#17. 어린 시절의 기억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by 수현

오늘 일종의 집단 상담 비슷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나의 옛사랑이 떠올랐다. 그가 그리워서가 아니다.


우리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한참 동안 대화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그의 문자가 끊겼다. 그는 나의 문자를 읽었지만 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13시간을 기다렸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결국 폭발해서 그에게 울분을 토로했다. 그는 나의 반응에 당황한 듯했다. PC로 카톡을 켜놨더니 문자를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지나간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근데 왜 이렇게 화를 내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언제 올까 기다려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초등학교 1~2학년 때 엄마가 집에 잘 안 계셨다. 창문 틈에 열쇠가 놓여 있는 날이면 혼자 시간을 보내며 엄마를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가끔 열쇠가 놓여 있지 않으면 엄마는 옆집에 가 있으라고 얘기하곤 했는데 나는 말을 듣지 않았다. 굳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엄마를 3시간이고 5시간이고 기다렸다. 우리 집이 13층이었는데 해가 지고 복도가 어두컴컴해질 때까지 하염없이 엘리베이터 숫자가 올라오는 걸 바라보며 나는 엄마를 기다렸다. 숫자가 올라오다가 12층에서 멈출 때, 혹은 13층에 섰는데 다른 사람이 내릴 때, 그때는 기대감이 커진 터라 아쉬움이 더 크게 밀려왔다. 엄마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면 늘 미련하다고 혼내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10년도 더 지난 그때의 기억이 왜 떠올랐을까. 그냥 뭐하냐고, 왜 대답 안 하냐고 남자 친구에게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나는 그걸 하지 못한 채 감정을 삼켰다. 마치 어릴 때 엄마에게 보고 싶었다고, 좀 일찍 오면 안 되냐고 말하지 못했던 것처럼. 나는 떼를 쓰는 아이가 절대 아니었다. 원래 성향도 그랬는데, '착한 아이'에 대한 학습이 더해져 원하는 바를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습관과 상처의 기억이 점철되어 어른이 된 나를 또 아프게 했다. 남자 친구에게 감정을 토로한 다음 날 아침, 나는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으며 오열했다. 어린 시절의 내가 가여워서. 그 기억이 현재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이건 엄마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 잘못도 아니다. 그때 엄마는 고작 지금 내 나이 정도였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으니 자신의 삶을 즐길 권리가 있었다. 나 또한 그렇게 표현하는 성격이 아닌 게 내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서로 제대로 이야기하고 감정을 나눌 기회가 없었기에 그게 상처가 되어 곪았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과거의 아픈 상처가 현재에도 영향을 주는 경우가 생긴다는 점이다.


나는 다행히 심리학 전공을 하며 스스로를 들여다볼 기회가 많았고, 몰랐던 감정이 드러날 때마다 객관화 작업을 하면서 그 자아를 보듬어 주는 작업을 했기에 계속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선을 이해하지 못하고 돌보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오늘 다시 한번 어렴풋이 느꼈다. 그 상처가 대물림되는 경우 또한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또한 이해한다고 자만하고 있는 것일지도.


어쩌면 서로의 체계가 다름을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서로의 입장과 감정을 전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릴 때부터 그런 연습을 계속한다면 어떤 경험에 대한 자신의 다양한 반응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나. 그런 문화가 형성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방법론을 고민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편식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