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쿨할 순 없다

#19. 엄마의 방식을 이해하기까지

by 수현

엄마는 좀 쿨한 편이다. 다른 집이랑 비교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다른 엄마들이 안된다 하는 것들이 나에게는 모두 허용되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다른 집에 자고 오는 것이 괜찮았다. 통금 시간도 따로 없었다. 엄마는 나에게 공부하라고 압박을 준 적이 없으며 숙제 검사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고등학교 때 수련회 가는 날 술을 챙겨주신 적도 있다. 내 머릿속 엄마는 웬만한 것은 다 허용되는 분이셨기에 관련된 에피소드와 추억들이 많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독특한 꽃을 찾아오라는 신기한 과제를 준 적이 있다. 마치 톰 소여의 모험처럼 친구들과 나는 꽃 하나 찾겠다고 비닐하우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오후 5시쯤 집에 도착했다. 아이가 늦은 시간까지 계속 돌아오지 않으니 엄마는 내가 실종된 줄 알고 신고를 하려던 참이었다. 하교 후에 엄마가 집에 안 계신 경우가 꽤 있었기에 나는 당연히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쿨하니까 별로 신경 안 쓸 거라 생각했다. 이때 집에서 나는 엄청 혼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2002 월드컵이 열렸다. 응원 후 가까운 친구 집에 갔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전화를 했는데도 받지 않으시길래 괜찮겠지 싶어서 그냥 친구 집에서 자고 다음 날 곧장 등교했다. 0교시가 지나고 담임선생님이 집에서 전화가 왔다고 전해주셨다. 집에 전화했더니 왜 집에 안 들어왔냐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 나는 엄마의 반응보다도, 내가 연락 없이 외박하는 게 당연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점이 웃겼다. 그만큼 집안 분위기가 프리 했었나 보다.


그래도 엄마가 나를 믿었기에 별로 제약을 두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언니를 보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파악했다. 엄마가 언니한테 공부해라, 뭐 하지 마라, 뭐 해라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공부 안 한다고 혼나는 것을 보고 나는 공부를 미리 열심히 했다. 옷차림 보고 혼나는 것을 보고 나는 최대한 헐렁하게 입고 다녔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늘 모범생이었다. 그랬던 나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심하게 겪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수련회 가는 날 엄마가 술을 챙겨주셨는데, 그때를 시작으로 친구들과 가끔 술을 먹었다. 부끄럽지만 처음으로 술에 취한 다음 날 술병이 걸려 일어나지를 못했다. 그때 엄마는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꿀물을 타 주셨다. 그때 정말 놀랐다. 아무것도 묻지 않아서 좋기도 했지만 이 정도로 쿨할 수 있나 싶었다.


쿨하다는 것은 다르게 해석하면 무관심하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독립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컸다. 좋은 일이 있어도,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서 공유한 적은 없다. 대화가 없었던 거다. 좋은 일이야 친구들과 나누면 그만인데 힘든 일은 친구들과 나누기도 어려운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도 정확하게 모른 채 열심히 죽을힘을 다해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싫었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이 싫었다. 하루는 집에 도착해서 혼자 울었다. 울음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베개를 부여잡고 울었다. 그때 '인생은 혼자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집을 떠나고 싶었고, 그걸 원동력 삼아 더 열심히 공부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엄마가 정말 쿨했기에 나는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 힘든 일이 훨씬 많았는데, 그때마다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혼자서 중심 잡는 것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가 원래 말을 먼저 건네는 게 아니라 들어주는 타입이라는 것을 성인이 된 후에 알았다. 내가 먼저 말을 걸면 너무나도 잘 들어주는데 어릴 땐 그걸 몰랐다. 묻지 않으니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전화할 때마다 조잘거린다. 여전히 엄마는 먼저 전화를 하는 일이 거의 없고, 전화해도 묻지 않는다. 그게 엄마의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30년이 넘게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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