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사랑이란

#22. 그 미묘한 관계의 깊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by 수현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부모님 두 분 다 서로가 서로의 첫사랑이자 끝사랑이실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짐작한다 해도 첫사랑의 감정이 평생 간다는 보장은 없다. 두 사람의 관계는 미묘하다. 인생의 동반자라고 하기에도 좀 애매하다. 엄마는 아빠에게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많았고 아빠는 그냥 웃어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머릿속에서 꿈꾸는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은 아니었다.


엄마가 예전에 얼핏 어떤 남자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엄마가 20대 초중반일 때 군인인지 경찰인지 어떤 남자가 반해서 쫓아다녔다고 한다. 얼굴도 잘 생기고 키도 크고 직업도 괜찮은 남자였다고 했다. 근데 왜 안 사귀었냐고 물었더니, 부끄러웠다고 했나?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 쫓아와서 대화를 시도하니 엄마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는 부끄러웠던 거다. 좀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남자였으면 만나서 잘해줬을 것 같은데. 엄마가 27살에 중매로 만난 아빠와 한 달 만에 결혼을 했다고 했으니, 만약 그 나이에 그 남자를 만났더라면 결혼까지 하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언니랑 나는 없었겠지만.


나와 언니를 제외하고 엄마 입장에서만 본다면 아빠보다는 그 남자가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빠와 엄마의 관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듯 보였기에. 20대부터는 내가 따로 살아서 정확한 기억이 없지만, 내가 중학생 때부터 두 분의 사이는 안 좋았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웃으며 대화하시는 걸 본 적이 없다. 자연스럽게 가족이 함께하는 건 없었다. 여행도 따로 갔고 외식도 따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굳이 대학을 서울로 와야겠다 생각한 이유도 그런 분위기가 싫어서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30대가 되어 부부의 미묘함을 이해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두 분의 관계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의 관점이 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엔 내가 부산을 내려가면 영화도 같이 보고 일종의 데이트도 같이 한다. 맛있는 것도 같이 찾아서 먹는다. 이번에 추석에 내려갔을 때는 곰장어 먹으러 기장도 같이 가고, 아쿠아리움도 가고, 두 분이서 같이 나를 배웅도 해주셨다. 같이 걷는 두 분의 뒷모습을 본 건 그때가 거의 처음이다.


내 머릿속 '이상적 부부'는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하며 달콤한 말을 건네고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애정을 표하는 커플이었다. 부모님이 그런 이상에 반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셨기에 내 관념 속에서 '두 분은 서로 사랑하지 않는 거야'라 생각했고 슬펐다. 요즘은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긴 세월 동안 두 분의 관계가 변하는 모습을 멀리서나마 지켜본 결과, 두 분의 '사랑'과 '관계'에 대한 나의 해석은 왜곡이었음을 느낀다. 어른이 되어 부모님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그분들만의 관계와 감정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그분들만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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