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죽음에 대하여
외할머니댁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사촌언니 오빠들이 많았지만 나만큼 그 강아지를 애지중지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외할머니댁은 밀양의 산골짜기에 있었는데, 마을 주민 몇 명을 제외하고는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라 우리가 가면 강아지는 오두방정을 떨면서 반겨주었다. 나는 갈 때마다 밥도 주고 같이 마당을 뛰어 놀기도 하면서 강아지에게 애정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내가 8살이 되던 해에 갑자기 강아지가 죽어 버렸다. 노쇠하여 저 세상으로 간 것인지 어떤 건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강아지 집을 맴돌면서 거의 1년을 슬퍼했다.
엄마는 함께하는 생명의 유한함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미 알고 계셨다. 그래서 동물을 워낙 좋아하는 내가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도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힘든 시기를 겪고서도 동물과 함께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치곤 했다. 특히 학교 앞에서 뛰어노는 병아리를 지나치는 건 쉽지 않았다. 한두 달 한 번쯤 아저씨는 50여 마리의 병아리를 트럭에 싣고 초등학교 앞에 오셨다. 나는 매번 30분씩 구경하다가 집에 가곤 했는데 엄마가 절대 반대할 걸 알았기에 내 돈 주고 사지는 못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지나가던 친구가 병아리를 건네며 '너 가질래?'라고 물었다. 직접 돈 주고 사는 것만 아니면 괜찮을 거라는 이상한 논리로 나는 망설이지도 않고 병아리와 함께 집에 갔다. 엄마는 보자마자 기겁을 하면서 다 죽어가는 애를 데려오면 어떡하냐고 혼을 내셨다. 내 눈에는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짝 기력이 없어서 누워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말이다. 나는 현관에 박스로 집을 마련해 주었다. 물도 주고 음식도 줬다. 엄마 말을 듣고 보니 병아리가 정말 아파 보였다. 일어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밤늦게 일어나서 병아리의 상태를 확인했다. 천으로 이불도 덮어주었다.
다음 날 병아리는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는 바보같이 죽어가는 병아리를 데려와서 괜히 뒤처리만 힘들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건 귀찮다는 표현이 아니라 죽은 병아리가 불쌍해서 하신 말씀이라는 걸 나는 알았다. 그때 나는 죽음의 마지막 순간이 어떤지 몰랐다. 내가 가끔 아파서 누워 있는 것처럼 병아리도 그냥 아픈 것일 뿐이라 생각했다. 밥도 주고 약도 주고 잘 돌보며 다시 초등학교 앞에 있던 병아리들처럼 힘차게 삐약질을 할 거라 생각했다. 아침에 죽어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나는 병아리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자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 그래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죽음'이란 걸 처음 만났다. 나는 이상하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죽음을 두려워했었다. 우주에 아주 작은 개미들만 남아서 나도 개미가 되어 죽는 외롭고 무시무시한 꿈을 어린 시절 자주 꾸었다. 꿈을 꾸다 깨면 울면서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가 왜 우냐고 물으면 나는 '내가 사라지는 꿈을 꿨어. 엄마 아빠 우리 다 죽으면 어떡해. 무서워.'라고 대답하곤 했다. 고작 7~8살이었는데 왜 그런 게 무서웠을까 싶다. 어쩌면 이후에 겪을 '죽음'을 미리 예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온몸이 오싹해질 정도로 두려웠던 관념 속 죽음과 실제로 겪은 죽음은 다르면서도 비슷했다.
아직도 그 날 아침 죽어있던 병아리의 모습이 잊히지가 않는다. 마음 한편이 서늘하면서 쓰라린 느낌은 존재의 부재와 결핍에 대한 쓰라린 인정을 요구했다. 그 날 이후로 집에서 뭘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엄마의 선견지명엔 이유가 있었고 병아리의 죽음을 통해 나는 그걸 확실히 깨달았다.